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를 찾은 손님들은 한 여성의 서글픈 울음소리에 깜짝 놀랐다. 하나둘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여자 곁으로 몰려들었다.
울음의 주인공은 배우 정유란 씨.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리즈 펄 지음·부희령 옮김)를 펴낸 출판사 여름언덕이 마련한 출간 기념 연극에서 연기하는 중이었다.
이날 연극은 남편에게 이혼 통보를 받고 방황하던 중산층 여성이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한 뒤 여성에게 돈과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15분 분량의 모노드라마.
책 내용 역시 이혼당한 저자가 200여 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뒤 돈과 남성에 대해 지니고 있는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날 것을 호소하는 자전적 에세이다.
조명도 배경음악도 없었고 무대세트라곤 배우가 앉은 의자뿐이었지만 30, 40명의 관객이 빼곡히 서서 연극을 관람했다.
신세 한탄을 하던 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꾸다 결국 만난 건 배가 볼록 나온 ‘왕자’였죠”라고 말하자 관객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돈이 행복의 조건은 아니지만 여자라고 돈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할 땐 많은 관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연극은 무대에서처럼 집중도가 높지 않았고 주변 소음 때문에 대사가 잘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여성의 현실을 정확히 꼬집은 내용으로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극본을 쓴 극단 ‘아이’ 대표 강태준 씨는 “연극은 무대에만 있어서는 안 되고 관객의 생활 속에 있어야 한다”며 “책 홍보용 이벤트가 아니라 연극의 기본에 충실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을 끝까지 지켜본 원지욱(26) 씨는 “젊은 여성이 공감할 내용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표현해 책에 대한 궁금증도 유발한 일석이조 이벤트”라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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