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대와 서태지 사이에서 길을 잃다 상상력을 찾다

  • 입력 2007년 1월 10일 03시 00분


■ 주목받는 72년생 작가들, 무엇이 다른가

《지난해 두 번째 창작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를 낸 이기호 씨는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자리 잡았다. 두 번째 창작집 ‘자정의 픽션’을 낸 박형서 씨도 한국 문단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는 소설가로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나온 정이현 씨의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는 지난해 12만 부 이상 팔렸다.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으로 지난해 말 출간된 김언수 씨의 장편 ‘캐비닛’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1972년에 태어난 작가다. 이들뿐 아니라 심윤경 씨의 ‘이현의 연애’, 김도언 씨의 ‘악취미들’, 원종국 씨의 ‘용꿈’도 지난해 출간된 1972년생 작가들의 작품이다. 2005년 첫 단편집을 낸 편혜영 구경미 씨도 1972년생. 올해 초 세 번째 창작집을 내는 윤성희 씨는 1973년 1월생으로 1972년생들과 동갑내기 작가로 분류된다.

이렇게 많은 작가가 한 해에 태어난 것은 드문 일이다. ‘72년생 작가군’ 이후로 동갑내기 작가 집단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72세대’들은 단순히 동갑내기 작가군이어서가 아니라 그 전 세대와도, 이후 세대와도 다른 체험과 의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 집단적 기억의 종언

유신이 선포된 1972년에 태어나 1991년 대학에 들어갔다. 중고교 시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들에게 배운 사람도 상당수다. 대부분의 72세대는 이런 삶의 궤적을 거쳤다. 특히 ‘91년 5월 투쟁’의 체험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1991년은 당시 명지대생 1학년 강경대 씨가 시위 중 숨졌고 대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랐던 해다. 72년생 작가들은 “그렇게 집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상처의 기억은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이현 씨는 “미팅하러 나가면서도 ‘강경대와 내가 동갑인데 나는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는 “언젠가 문학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연하게나마 문학을 공부하려면 사회를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다”면서 “우리가 아마 사회적 부채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라고 돌아본다. 원종국 씨도 “우리는 사회적 관심의 끈을 생래적으로 끊을 수 없는 세대의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편혜영 씨도 “우리는 20세기적 감성으로 21세기를 사는 마지막 세대”라고 밝혔다.

문학이 폭넓고도 고급스러운 표현 양식이라는 확신을 갖고 중고교 때부터 문학의 꿈을 키운 마지막 세대라는 주장도 나온다. 윤성희 씨는 “최승자 김혜순 장정일 씨 등 문인들을 연예인처럼 생각했는데, 그렇게 문인을 우상시하는 것은 우리가 끝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기호 씨는 “습작기 때부터도 나무 하나를 작품에 쓰더라도 직접 가서 보든지 나무대백과사전을 찾는 등 공을 들여 작업했는데 요즘 문학 지망생을 보면 간편하게 네이버에서 두드리더라”면서 문학에 대한 외경심이 사라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 그리고 개인의 시작

그러나 극렬했던 1991년이 지나고 이듬해 동갑내기 가수 서태지가 등장하면서 72세대들은 또 다른 충격을 받는다. 집단이 아닌 ‘나’의 강조, 화려하고 세련된 문화적 세례 등에 노출된 것이다. 단 한 해 만에 일어난 변화에 72세대들은 혼란스러워 한다.

윤성희 씨는 “무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은데 후배들은 ‘왜 그런 걸 해야 해요?’라고 물었다. 갈팡질팡한 뭔가가 있었다”고 대학 생활을 회고했다. 정이현 씨는 “나는 나이며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앞서 생각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이런 생각이 우리 위 세대와는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에 이르러 개인적 다양성이 본격화한 것이다. 그래서 72세대들의 작품은 ‘사회적인 고민이 존재하면서도 저마다의 독특한 개인적 상상력으로 표현한다’는 평을 받는다.

평론가 백지연 씨는 “이들 세대는 작품에 공동체적 관심사가 있기는 하지만 주제의식을 범주화할 수가 없다”면서 “다양한 소재를 저마다의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해 내는 게 이들의 특징이며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문인 탄생 ‘11주기설’ 계속될까?

문단에서는 재기 있는 문인들이 11년마다 몰려서 태어난다는 ‘11주기설’이 알려져 있다.

첫 세대는 1941년생. 광복을 앞두고 태어났으며 성년에 이르러 4·19혁명을 체험한 세대다. 시인 김지하 오규원, 소설가 김승옥 이문구, 평론가 염무웅 김주연 씨 등이 41년생 동갑내기 문인들. 이들의 등장은 일본 문화의 그늘에서 벗어나 우리말로 생각하고 한글로 쓰는 ‘한글세대’의 시작을 의미했다.

다음 세대는 6·25전쟁 중인 1952년생 작가들. 이해에 태어난 문인들은 유신 선포 때 성년에 이르렀고, 문학적 이력을 시작해 활발하게 작품을 생산한 청년 시기를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맞물려 보내야 했다. 시인 황지우 이성복 김승희 최승자, 평론가 권오룡 진형준 씨 등이 그들이다.

세 번째 세대는 1963년생이다. 평론가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가 ‘63세대와 공룡의식’이라는 평론에서 ‘무엇인가 거대한 것이 사라졌음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라고 특징을 묘사한 세대다. 시인 유하 함성호, 소설가 김소진 김인숙 공지영 신경숙 주인석, 평론가 이광호 권성우 씨 등이 1963년에 태어났다. 이들은 대부분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사회주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사라졌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집단적으로 체험한다.

11주기설에 따르자면 1963년생 다음 세대는 1974년생이 돼야 한다. 그러나 1972년생 작가군 이후로는 아직껏 다수의 동갑내기 작가군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 11주기설이 깨지는 것인지, 뒤늦게라도 작가군이 만들어져 계속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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