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9년 만화 ‘탱탱’ 벨기에서 첫선

  • 입력 2007년 1월 10일 03시 00분


보이스카우트 탐정 기자 리포터 등 직업 불분명. 알려진 이름은 성(姓)인지 애칭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일흔이 넘었음에도 얼굴은 10대의 동안(童顔). “수없는 모험과 사고로 호르몬 분비에 이상을 일으킨 때문”(캐나다 셔브룩대 의사 클로드 시르)이란다.

탱탱(Tintin).

살짝 올린 앞머리에 놀란 듯한 얼굴. 미키마우스나 아톰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유럽 만화의 대표작. 국내에선 ‘틴틴의 모험’으로 소개된 만화 캐릭터다.

등장은 평범했다. 1929년 1월 10일 유럽에서도 소국인 벨기에. 한 신문에 딸린 부록으로 시작했다. 아동용치곤 대사가 많고 구성도 복잡했다. “어린이에게 맞지 않는다”는 악평을 받았다.

하지만 만화답지 않게 진지한 분위기는 성인 팬을 사로잡았다.

소련 콩고민주공화국 티베트 그리고 달나라까지 넘나드는 꼼꼼한 취재. 차분한 주인공에 비해 애견 밀루, 아도크 선장 등 주변 캐릭터가 생기를 불어넣었다.

탱탱 전집을 모으는 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유행이 됐다. 60여 개 언어로 발간돼 누적 판매부수가 2억 권이 넘는다. 지금도 해마다 300만 권이 팔린다.

지치지 않는 탱탱의 저력은 유럽의 자존심이었다. 1930, 1940년대 유럽 만화계는 미국 초인만화 앞에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신세였다. 신대륙을 깔보다 대대적 공세에 숨 가빴던 유럽. 탱탱은 유럽 만화를 구해낼 구원투수이자 잔 다르크였다.

유럽 문화의 맹주를 자처한 프랑스에선 더욱 각별했다.

프랑스 정부는 1940년대 후반 문화 보호책을 발표해 미국 만화를 봉쇄한다. 탱탱과 ‘아스테릭스’, 또 다른 벨기에 만화 ‘스머프’가 프랑스의 온실 속에 꽃을 피웠다. 샤를 드골은 “거인(미국)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는 소인”으로 탱탱과 자신을 거론했다.

프랑스와 탱탱은 세계관에서도 호흡이 맞았다. 평론가들은 탱탱에 대해 “초기엔 식민주의 관점, 1940, 1950년대는 나치를 방불케 하는 극우적 색채, 이후엔 반제국주의와 자유주의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제3세계는 약탈하면서 미국에는 자국문화 옹호론으로 대항한 이중성.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버젓이 자랑하는 그들. 탱탱에 겹쳐진 프랑스의 모순에서 외규장각도서 반납이 녹록지 않을 것임을 거듭 예감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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