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경영학으로 본 ‘007…’ 성공비결

  • 입력 2007년 1월 11일 03시 00분


‘앗, 이렇게 터프한 제임스 본드가…?’

007 시리즈 최신작 ‘007 카지노 로얄’(지난해 12월 21일 국내 개봉)을 본 관객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신무기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맨주먹만으로 악당을 처치하는 울퉁불퉁 근육질 몸매의 제임스 본드. 미꾸라지처럼 뺀질뺀질한 기존의 제임스 본드와는 180도 다른 새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를 두고 “차라리 ‘터미네이터’에 가깝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1962년 ‘살인번호’를 시작으로 45년간 지속된 007 시리즈. 그 21번째 최신작인 ‘007 카지노 로얄’(이하 ‘카지노 로얄’)이 관객의 뒤통수를 치면서 세계적인 ‘대박’을 냈다. ‘카지노 로얄’은 ‘007 어나더데이’(2002년)가 세운 007 역대 최고 흥행성적(4억3000만 달러)을 넘어 5억 달러에 육박하는 히트를 기록 중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문지원 수석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카지노 로얄’의 성공 요인을 기업의 신상품 개발이라는 경영의 관점에서 분석해 봤다. 이름 하여 ‘카지노 로얄의 혁신 전략’.

①선행(先行)적 혁신=007 시리즈는 그간 휴대전화의 신상품 개발 모델과 유사했다. 매번 좀 더 기발한 신무기, 좀 더 섹시한 본드 걸, 좀 더 악랄한 악당을 등장시켜 내용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을 통해 제품의 점진적 개선을 꾀해 온 것이다. 이는 전화 기능에다 카메라 기능을 추가하고 그 다음엔 MP3플레이어 기능을 또 보태면서 기능을 점차 업그레이드해 온 휴대전화 개발 전략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신규 수요’를 창출하지 못한다. 기존 휴대전화(혹은 007 시리즈)의 소비자(혹은 관객) 층을 벗어날 수 없는 것. 크게 실패하지도 않지만 크게 성공하지도 않는, 현실 안주형의 이런 개발 전략을 거듭하다 보면 기존 007 브랜드의 성공 요인(신무기, 본드 걸,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당 등)이 오히려 획기적인 브랜드의 혁신을 가로막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른바 ‘성공의 역습’이다.

‘카지노 로얄’은 성공의 법칙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선행적 혁신’을 단행했다. 타성에 젖은 요소를 모조리 혁신함으로써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유전자 자체를 바꿔 버린 것이다. 007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는 올드 팬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극장을 주로 찾는 젊은 세대를 새롭게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②디지로그(Digilog)=‘디지로그’는 디지털(digital)이란 첨단 기술이 아날로그(analog)라는 오래된 감성과 융합하는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 차가운 디지털 시대가 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인간적이고 따스한 아날로그적 정서를 갈망한다는 사실에 ‘카지노 로얄’은 주목했다. ‘디지로그’ 현상을 간파한 것.

‘카지노 로얄’ 속 제임스 본드는 바람둥이가 아니다. 한 여자에게 목숨을 바치면서 “사랑을 위해서라면 첩보원직도 버리겠다”고 달려드는 일편단심 순정파로 대변신했다. 그는 만년필 폭탄, 수륙 양용 자동차 같은 기상천외한 신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채 흠씬 두드려 맞고 무지막지하게 구타하는 비능률적이고 땀내 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한다. ‘뺀질이+신사+바람둥이’ 제임스 본드에 식상한 관객들은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투박한(혹은 무식한) 새 제임스 본드에게 인간적인 정(情)을 느끼는 것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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