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1시 40분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하는 것으로 경남 산청군 프란치스코회 성심원(원장 박영선 수사) 소속 한센인들의 서울 나들이가 시작됐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이 고향인 최루치아(72)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1964년 한센병에 걸려 갓 태어난 3남매를 보육원에 보내고 쫓기듯 성심원에 들어온 지 43년 만의 외출이다. “정면 사진은 찍지 말아 주세요.” 보도진이 최 할머니에게 몰리자 이들을 모시고 온 임재순 팀장이 신신당부한다. 사위와 두 며느리는 최 할머니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물론 만나 본 적도 없다. 가족사를 묻자 얼굴을 가린다. 앙상한 뼈마디 속에서 가녀린 흐느낌이 들린다.
30년 전 서울을 스치듯 한 번 들렀다는 박순란(70) 할머니. “서울이 너무 좋지예”라면서도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기가 힘들다. 이날 상경한 10명의 한센인 모두가 그랬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태어나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다는 듯….
권영석(77) 할아버지는 그래도 당당했다. 20여 년 만에 무명용사비를 찾아 6·25전쟁 당시 전사한 형에게 국화 몇 송이를 올렸다. 아내와 동행한 권 할아버지는 자녀들과 비교적 자주 만나는 편이다. “죽기 전에 여기 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권 할아버지는 “감개가 무량하다”는 말을 되뇌다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한 할머니의 자녀들은 이날 예정된 만남을 11일로 미뤘다. 10일의 가족 상봉이 이례적으로 대외에 공개됐기 때문이었을까. 어머니를 어머니라 맘 놓고 부르지 못한 자식들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이들의 나들이는 한강유람선 탑승, 남산, 청계천, 명동성당 등을 방문한 뒤 11일 끝이 난다. “여러분은 감격적이고 떠들썩한 고향 방문을 생각했겠지만 어르신들에게는 너무나 가슴 아픈 귀환입니다.” 임 팀장은 “한센병은 요즘 독감만도 못한 병인데도 한센인을 보는 세상의 눈은 여전히 너무나도 차갑다”며 “세상의 편견과 벽을 넘어 용기 있게 나들이를 나온 어르신들에게 따스한 손을 내밀어 달라”고 강조했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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