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의 소년들은 청년들이 거리투쟁에 나선 사이 문밖출입을 삼갔고 자기만의 우상을 만들었다.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간에 청년의 분노와 어른들의 저주로부터 격리됐던 소년들은 스스로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만들어갔고 나름의 소명의식을 키웠다. 이 만화는 그 시절, 그 소년들의 생활기이자 성찰기이다.
김홍모는 2003년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만화를 알리기 시작했다. 네티즌 사이에 회자되는 여느 인터넷 만화와 달리 동양화를 전공한 김홍모의 만화는 손맛이 진하게 풍기는 수묵채색화이다. 다수의 작품이 시사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직격탄도 우회탄도 아니다. 김홍모 만화는 시대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이를 희망의 에너지로 대체하게 만드는 치유적 매력을 보여준다.
똘이장군이 붉은돼지를 잡아 북한을 심판한 것처럼, 돼지저금통을 갈라 평화의 댐 모금 대열에 섰던 일을 추억한다. 깊은 잠에서 깨어 보니 백옥처럼 빛나는 눈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던 일을 추억하고, 그 위에 거대한 로봇 태권브이를 그렸던 이야기도 들려준다.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없는 세대 간의 정서 탓에 지금의 30대는 386세대에 뭉치거나 신세대의 터줏대감 꼴을 하고 있다.
그래서 외로웠지만 소년들에게는 영화, TV, 잡지, 만화 등 화려한 대중문화의 세계가 있었다. 거기서 목표를 찾았고 탐구와 모험을 지속했으니 대중문화를 통해 우민화정책을 폈던 당시 군사정권의 시도는 적중한 셈이다. 그러나 ‘정권은 짧고 정치는 길다’는 말처럼 대중문화의 역기능은 순기능보다 짧았고, 그들의 속셈보다 깊었다.
1990년대 학번은 현실 정치의 힘보다 강력한 대중의 힘, 대중문화의 가치를 믿고 있다. 평화의 댐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똘이장군의 소명을 통해 돼지저금통에 간절함을 담는 법을 배웠다. 헛된 꿈을 좇는다 했지만 눈밭에 그린 태권브이는 ‘자연을 해하지 않는 기술과 산업 발전’의 묘를 찾는 노력이 됐다. 개발세대와 민주화세대가 부와 민주주의를 구축했지만 산골까지 찾아든 공장은 황폐한 성장에 불과했다. 그래서 김홍모는 눈밭에 태권브이를 그렸던 우민화세대의 생활과 성찰을 이야기한다. 대중문화의 피로 성장한 이들이 이제 우리의 문화자원과 상상력이라는 창조적 에너지로 굴뚝 없는 공장, 자연과 함께하는 성장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다. 지금보다 나중이 더 기대되는 작가이다.
만화평론가 박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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