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고 상처받은 감정은 다시 비난과 욕설을 부르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 억견과 나 혼자만이 옳다는 독선이 판을 치는 현실 속에서 모두의 공감을 토대로 당면 문제를 풀어낼 차분한 논리는 설 자리가 없다.
사회가 이럴수록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백범 김구(사진)의 말은 가슴을 찌른다. 나라의 기틀이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혼란한 시기에 백범은 왜 부력(富力)과 강력(强力) 대신 문화의 힘을 바랐을까?
백범은 우리 민족과 인류의 불행을 구할 큰 힘이 무력과 경제력 같은 물질보다도 문화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문화란 무엇인가? 산에는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않는다. 들에도 한 가지 꽃만 피지 않는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듯 서로 어울려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랑의 마음이 바로 문화라고 그는 규정한다. 다시 말해 백범에게 문화란 증오와 투쟁이 아닌 건설과 화합의 정신이다.
구한말에 태어나 동학에 참여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당시 일반 노동자의 일당이 1원일 때 무려 60만 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던 사람. 두 아들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회고한 이 책은 한편으로 우리 민족에 하고 싶은 말의 요령(要領)을 적은 것이기도 하다.
혼란스럽고 암울했던 시대를 관통하였던 만큼 백범의 올곧은 삶은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위해서나, 얽히고설킨 오늘의 상황을 풀어나갈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위해서나 훌륭한 생각거리들이 아닐 수 없다. 문제가 많았던 시대일수록 문제보다 더 많은 해법과 대안이 나왔을 것이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것들의 타당성을 판별하고 평가할 위치에 있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보자. 모두가 반기던 일본의 조기 항복을 그는 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로 표현했을까? 교육이란 생활의 기술이 아니라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오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으며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독재를 막는 일이라던 백범의 주장은 왜 실현되지 못했을까?
늘 마음속에 두면서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책. 백범이 부르짖던 ‘나의 소원’은 빛바랜 고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문제라는 점에서 일독을 권한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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