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노래하다가 신나면
우리한테도 시킨다.
날마다 같은 동네를 다녀서
시집간 누나 이야기도 묻고,
바쁘게 뛰어오지 말고
일찌감치 나오라고 야단도 친다.
한 시간에 한 대
아니면 두 시간에 한 대,
할머니들은 삼십 분을 기다려서
십 분을 타고 간다.
하루는 몰던 차 세워 두고
동네에서 물 좋기로 이름난
명훈이네 물 받으러 간 기사 아저씨 들으라고
차에 타고 있던 할머니들
“차비 깎아야 한다!” 소리치셨다.
시집 ‘놀아요 선생님’(창비) 중에서》
글쎄, ‘삼십 분 기다려서 십 분’ 타고 가는 할머니들 차 속에 두고, 근무 시간에 물 뜨러 갔으니 할 말 없긴 하겠다. 하지만 할머니들 무거운 함지박과 보퉁이 번쩍 끌어주고, 정류장 없는 외딴집 앞에도 세워 주고, 돈 백 원 모자라도 외상으로 태워 준 것도 저 기사일 터이니, 애당초 저들은 셈이 안 되는 관계렷다. ‘옜소, 할머니들도 찬물 한 대접씩 드시오.’ 넉살 좋게 웃으며, 다시 부릉부릉 시골 버스를 몰고 떠났을 테지.
도시의 탈것이 이곳에서 저곳에 도달하기까지 ‘유예된 시간’이라면, 저 시골 버스는 이곳에서 저곳까지 ‘누리는 시간’을 보여 준다(삶은 ‘건너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시계가 없어도 바쁠 것 없던, 처음의 시간은 어디로 갔는가.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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