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 in JAPAN]<4>홋카이도 니세코 스키장

  • 입력 2007년 1월 20일 03시 01분


홋카이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스키장 니세코를 구성하는 세 스키장 가운데 하나인 히가시야마의 자연설 슬로프. 능선을 덮은 시라카바(자작나무) 뒤로 ‘홋카이도 후지’라 불리는 화산 요테이(해발 1893m)가 보인다. 홋카이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홋카이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스키장 니세코를 구성하는 세 스키장 가운데 하나인 히가시야마의 자연설 슬로프. 능선을 덮은 시라카바(자작나무) 뒤로 ‘홋카이도 후지’라 불리는 화산 요테이(해발 1893m)가 보인다. 홋카이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북위 43도의 홋카이도. 그곳에서 즐기는 스키여행은 특별하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 잿빛하늘에서 풍기는 고즈넉한 북국의 정취, 그리고 주거니 받거니 니혼슈(일본 청주)로 수작(酬酌)하며 보내는 긴 밤의 여유. 거기에 파우더스노의 부드러운 감촉과 싸락눈을 눈썹에 이며 즐기는 노텐부로(露天風呂·노천온천탕)는 덤이다. 일생일대의 멋진 여행을 기대한다면 이 겨울 홋카이도의 니세코로 떠나라.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하게 될 테니.

○ 눈 세상 홋카이도의 겨울 풍경

겨울 홋카이도는 눈, 그 자체다. 하늘도 땅도 모두 하얗다. 담담하기만 한 무채색의 눈 세상. 거기서 스키는 색체의 반란이다. 원색의 스키어와 보더가 주역이다. 이 유쾌한 돌출 반발 혁명의 현장. 침잠의 겨울에 이런 유쾌한 일탈마저 없다면 글쎄, 너무 우울하지 않을까.

신치토세 국제공항을 출발한 버스. 하얀 눈에 갇혀 어디로 가는지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느릿느릿, 시속 60km를 넘지 않는다. 그래서 니세코까지 119km를 세 시간이나 달린다. 푸짐히도 쌓인 눈. 언제 한번이라도 본 적 있는지. 차창 밖 홋카이도의 설경에 취한 이들. 예외 없이 이런 의문에 꽂힌다. ‘저게 뭐지?’

도로 양편 노견에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등처럼 가설된 화살표. 침이 아래를 향하는데 도무지 뭣에 쓰는 물건인지. “도로의 끝(노견)을 가리킵니다. 눈길에 차가 길 밖으로 빠지지 않도록 말이지요.” 눈이 재난이 되는 홋카이도에서 유독 돋보이는 특별한 시설물이다.

○ 현대판 고성(古城)건축, 니세코 프린스호텔

원기둥 형상의 니세코 프린스호텔. 심상치 않은 아키텍처(건축물)다. 유럽의 중세 고성 이미지를 차용한 듯한데 전체 이미지는 모던하다. 다음날 갠 아침. 그 뒤로 펼쳐진 요테이 산(해발 1893m)을 보고 나서야 알아챘다. 이 원기둥이 원뿔형 산과의 대치를 염두에 둔 건축가의 계산된 ‘반발’임을. ‘홋카이도 후지’라 불릴 만큼 후지산을 빼닮은 거산 요테이. 삼각뿔의 산에 원통형 건축을 대비시킨 건축가는 무채색 설원을 휘젓는 원색의 스키어만큼이나 도발적이고 반항적이다. 그럼에도 절묘한 그 둘의 어울림. 세상살이 묘함은 예서도 같다.

호텔의 로비. 천장의 샹들리에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줄에 꿴 유리구슬을 주렁주렁 늘어뜨린 것이 마치 빛의 커튼을 연상시킨다. 한겨울 북극권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의 이미지다. 로비 한가운데의 티라운지. 스키부츠 차림이 허용된 스키어의 공간이다. 이곳이 스키인 스키아웃형(현관에서 스키를 신고 벗는 설원형) 호텔임을 간파했다. 호텔 칭찬 한 가지만 더하자. 호텔 2층의 곤돌라역이다. 산정 아래 1175m 지점까지 스키어와 보더를 실어 나르는 곤돌라(6인승) 출발장이다. 호텔에서 곤돌라를 타고 내리도록 설계한 곳. 지구상 120여 개 스키장을 섭렵했어도 아직 이곳 외에는 본 적이 없다.

○ 홋카이도 스키의 자존심 스키장 니세코

총연장 45km의 트레일을 자랑하는 니세코. 홋카이도 최대 규모 스키장이다. ‘전산공통’ 리프트권으로 그 넓은 스키장을 모두 다닐 수 있지만 실제 이곳은 스키장이 세 개다. 트레일 지도상으로 보면 왼쪽이 안누푸리, 가운데가 히가시야마, 오른쪽이 그랜드 히라후다. 프린스호텔은 히가시야마 베이스에 있다.

스키장 규모는 표고 차(정상과 베이스의 고도 차)로 결정된다. 800m 이상이면 이상적인 스키장. 니세코는 890m(히가시야마 기준)다. 리프트 최정상은 1170m, 베이스는 280m. 베이스 역시 3개다. 안누푸리에는 ‘누크 안누푸리’라는 휴게소 겸 식당, 히가시야마 베이스에는 프린스호텔뿐 상업시설이 없다. 반면 히라후 베이스는 자연마을이다. 온천과 술집, 여관이 오밀조밀 들어선 마을 모습은 야마가타 현의 자오 스키장을 연상케 한다. 고즈넉한 설원 풍경의 안누푸리와 히가시야마, 고답적인 스키 마을의 히라후를 두루 갖춘 다양한 분위기. 이것 역시 니세코 스키장의 매력이다.

니세코에서는 늘 요테이 산과 더불어 스키를 탄다. 순간순간 설산 요테이의 장대한 산경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 때때로 프린스호텔과 어울려 멋진 풍경도 선사한다. 화산이라고는 제주도밖에 보지 못한 한국인 스키어. 그래서 요테이 산은 더더욱 신비롭게 비친다.

○ 파우더 스키를 즐겨라

홋카이도의 눈이라고 모두 파우더스노(밀가루처럼 훌훌 날리는 건조한 결정의 눈)는 아니다. 일본에서도 정평 난 곳은 사호로와 니세코 정도. 그러나 여기서도 항상 파우더스노를 기대할 수는 없다.

니세코 스키장의 명성. 그것은 엄청난 적설량과 잦은 파우더스노 덕분이다. 이 지형성 강설은 시베리아와 동해, 그리고 요테이 산의 합작품. 대륙의 차가운 기단이 동해의 습기를 머금었다가 이곳의 산악에 가로막혀 상승하며 쏟아낸 것이다. 올겨울은 홋카이도 역시 평년에 비해 강설량이 적은 편. 그런데도 니세코의 적설량(정상)은 16일 현재 △안누푸리 190cm △히가시야마 215cm △그랜드히라후 270cm를 기록했다.

사흘간의 스키 체험을 마치니 평가가 쉽게 나왔다. 마을형인 히라후는 번잡해 끌리지 않았다. 짧은 슬로프가 이리저리 연결된 데다 이용객도 많았다. 히가시야마는 이보다 쾌적했지만 트레일이 역시 짧았다. 반면 니세코 안누푸리는 매력 만점이었다. 활강 경주 코스처럼 쭉쭉 뻗은 트레일이 마음에 들었고 붐비지 않은 한산함이 좋았다. 설질도 이곳이 가장 뛰어났다. 슬로프 사면이 놓인 방향 덕이다. 파우더스노 역시 이곳에서 가장 질이 좋은 듯했다. 그리고 하나 더. 중턱에서 요테이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니세코의 설원풍경이다.

○ 애프터스키가 더 중요한 이유

애프터스키란 스키를 즐긴 이후의 휴식과 여흥. 요즘 스키보다 애프터스키를 더 즐기는 이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본 스키는 환상의 선택. 온천욕과 일본 음식, 깔끔한 맛의 일본맥주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개로 구성된 일본의 애프터스키는 전 세계 어디서나 명성과 칭찬이 자자하다.

니세코의 애프터스키는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켰다. 우선 온천욕. 니세코 프린스호텔의 노텐부로는 일본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멋진 곳이다. 온 가지에 하얗게 눈을 인 침엽수로 둘러싸인 연못에 조성됐는데 거기에 몸을 담근 채 눈을 맞으며 풍경을 감상하노라면 천국이 따로 없다. 프린스호텔의 음식도 이에 못지않다. 일식당의 가이세키나 바이킹(뷔페식)도 좋다. 홋카이도 특산 삿포로맥주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 그중에서도 홋카이도에서만 한정 판매하는 ‘클라시크(Classic)’를 권한다.

홋카이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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