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보는 남녀가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당연한 수순처럼 서로에게 젖어든다.
윤대녕(45) 씨의 소설은 그랬다.
‘생면부지의 여성과 남성 화자가 문득 만나는 장면’, 그 뜬금없어 보이는 남녀 관계를 그토록 매혹적으로 그려 내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가 새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창비)를 냈다.
책에 실린 중단편 8편 대부분이 문예지 발표 당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다.
24일 만난 윤 씨는 “작가의 삶에서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어요. 어머니 곁에 있다 보니 여자의 일생이 뭘까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족을 돌보고, 나이 들어가고…. 막연했던 여성의 이미지가 피부로 느껴졌달까.”(‘제비를 기르다’의 어머니는 철마다 가출해 길에서 몸으로 구르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나이를 먹고, ‘탱자’의 고모는 첫사랑의 상처를 안은 채로 굴곡진 삶을 살아간다).
-예전 작품엔 구차한 생활과는 관계없어 보이는 하늘하늘한 여성들이 대부분인데 이번엔 여자들이 그악스럽게 집안을 꾸려갑니다.
“몇 년 전부턴 인물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어요. 그렇게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고. 앞서 나온 책들은 여성 독자들한테서 종종 ‘공감할 수 없다’는 얘길 들었는데, 최근작들은 여성 독자의 호응이 많아요. 여성에 대해 알기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나 봐요. 나뿐 아니고 모든 남성이….”(웃음)
-한편으로 고단한 삶이면서도,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성찰을 발견합니다.
“‘탱자’의 병든 고모는 실제 고모님의 부음을 듣고 쓴 작품이에요. 큰 충격이었지요. 죽음에 대한 어렴풋한 관념이 육화했다고 할까요. 인생과 인간에 대해 좀 더 넓게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습니다.”
-등단 17년에 많은 작품을 냈지만, 윤대녕 하면 첫 소설집 ‘은어낚시통신’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손해 볼 때가 많다는 느낌도 들어요. ‘은어낚시통신’을 보면 저 스스로도 신통하다 싶긴 한데,(웃음) 문장이 거칠고 구조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눈에 띄고…. 작품집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지금껏 그 인상이 이어지네요.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해요. 그때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평이 나왔는데, 내가 그동안 많이 걸어왔지만 결국 그 주제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 그건 결국 내가 추구해 온 철학적 구현이라는 생각.”
-여전히 사람들은 길을 떠나네요. 그 여정에서 낯선 이들을 만나고….
“로드 로망! 난 이게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길을 떠난다는 게 결국 살아가는 것이고, 죽음을 준비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하면, 익숙했던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모색을 하는 지점에 와 있는 것이죠.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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