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뜻일까. 한자를 써야 짐작이 간다. 妙火. 묘한 불.
1887년 한국 최초로 임금이 사는 경복궁에 백열등이 켜졌을 때 당시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제멋대로 켜졌다 꺼지니 ‘건달 불’이라고 하기도 했다.
불을 밝히는 한성전기회사(현재의 한국전력공사)가 설립된 것은 그로부터 11년 뒤인 1898년 1월 26일.
당시 한반도는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다. 일본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됐고(1895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황제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1896년)이 있은 뒤였다.
전기사업에 깊은 관심이 있던 고종은 극비리에 한성전기회사의 사업 신청과 허가가 이뤄지도록 조치했다. 열강의 간섭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한성전기회사는 서울 시내의 전등 전차 전화 사업의 시설 및 운영권을 갖게 됐다.
호러스 알렌 주한 미국공사가 당시 미 국무부에 보낸 전문의 일부를 보자.
“황제(고종)는 서울에 전차궤도 설비가 공급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오랫동안 고대해 왔다. 특히 황제는 홍릉(洪陵)에 행차할 때 편리한 교통수단을 갖기를 간절히 소원해 왔다.”
홍릉은 명성황후의 무덤이었고 고종이 이곳에 행차할 때마다 막대한 경비가 들었다. 고종은 그 돈도 절약하고 백성에게도 편리한 대중교통을 제공하고 싶었다.
고종은 한성전기회사의 사업 파트너로 미국을 원했다. 그들에게 사업 이권을 주면 한반도 주변 열강으로부터 위협받는 나라와 황실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한성전기회사와 미국 측이 ‘남대문∼종로∼동대문∼홍릉’ 노선의 전차 건설계약을 체결한 것은 1898년 2월. 아쉬운 것은 한국이니 계약은 불평등했다.
계약서 말미에는 ‘계약 해석상 이견이 발생하면 영어 번역본을 정확한 것으로 간주하고 수락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다음 해 5월 우여곡절 끝에 한국 최초의 전차가 개통됐다. 전차는 곧 백성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한번 타면 내리지 않는 승객들도 있었고 시골에서도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고종의 뜻이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몇 년 뒤 한성전기회사는 자금 능력의 한계를 보이면서 경영권을 미국에 넘겨야 했다. 이 회사는 1909년 일제의 손아귀에 완전히 넘어갔다.
힘없는 나라, 나라 없는 기업의 비애가 그랬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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