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문화 상징인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민회관이 불탄 자리에 1974년 착공해 1978년에 개관했다. 이 일대에는 세월의 흔적만큼 은은한 전통과 독특한 사연을 지닌 알짜 맛집과 카페, 술집들이 들어서 있다.
세종로에서 30년 넘게 부동산업을 해온 김종수(74) 씨는 “최근 재개발 사업과 청계천 관광 특수로 젊은이들 입맛에 맞는 음식점이 많이 생기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금 세종문화회관 주변은 과거와 현재가 어색하게 공존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단,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주 모인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았다.
○ 깊은 맛, 훈훈한 인정을 찾는다=카페 ‘안개꽃’(720-6175)은 만화가들의 아지트다. 고우영 한희작 김형배 강철수 이두호 김수정 허영만 등 한국 만화의 대표적 인물들이 모여 밤낮으로 술을 마시던 곳이다. 이곳은 만화가 허영만의 작품 ‘안개꽃 까페’의 실제 배경이기도 하다. 정혜순 사장은 “허 화백이 작품을 위해 6개월 동안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 있었다”고 회상한다.
“어이, 술 한잔 하고 가. 이곳에선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야….”
이곳 단골손님들이 ‘초짜’ 손님들에게 던지는 말이다.
광화문의 오래된 맛집으로 빠지지 않는 곳은 1979년 문을 연 ‘광화문집’(739-7737). 꽉 차게 앉아 봐야 1, 2층 합해 30명 정도밖에 못들어가는 허름한 식당은 항상 손님들로 북적인다. 메뉴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가 전부다.
광화문집은 유난히 성악가들이 좋아하는 식당으로도 유명하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한 뒤 이 식당에서 든든하게 먹어야 몸이 풀린다는 것이다. 성악가 추현진 씨는“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공연 뒤 맛있고 따뜻한 김치찌개 국물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이 편해진다”며 “성공한 선배 성악가들이 좋아하던 곳이라 후배들도 닮고 싶은 마음에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세종로 사거리에 있는 일민미술관 1층의 카페 ‘이마’(2020-2088)는 커다란 머그잔에 담겨 나오는 커피와 와플로 유명하다. 맛과 분위기에 반한 젊은 연인들이 청계천 데이트를 전후해 자주 들른다.
이 밖에 세종문화회관 뒤편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섬’ 등 인근 직장인들이 즐겨 가는 카페와 ‘연속’ 커피숍 등 옛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업소가 성업 중이다.
○ 배우와 연주자들을 만난다=세종문화회관이 개관한 뒤 30년 가까이 일해 온 무대기술팀장 박래선(55) 씨. 박 씨에 따르면 연주자나 배우들은 공연을 앞두고 김밥과 샌드위치 등을 시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굶은 상태로 공연에 나서는 이도 적지 않다.
박 씨는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물은 금물이기 때문에 간단한 분식류 위주로 주문한다”며 “가수 나훈아 씨 같은 경우는 반드시 된장찌개를 시켜 먹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곤란을 겪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면 출연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식당을 찾는다. 세종문화회관 뒤편 로열 빌딩 지하에 있는 ‘깡장집’(720-6152)과 ‘비어할레’(732-1125)가 대표적이다.
된장찌개 전문점인 깡장집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된장찌개 백반 식사를 맛볼 수 있다. 대규모 좌석을 가진 비어할레는 뒤풀이에 적당한 맥주집이다. 스파게티 전문점 ‘뽐모도로’(722-4675)도 성악가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이 집에는 테너 임웅균 씨의 친필 사인이 크게 걸려 있다.
○ 세종로의 역사를 찾아라=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청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산책할 수 있는 곳이 많다. 가장 유서 깊은 산책 코스로 꼽히는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교회부터 경향신문사 사옥까지 이어지는 정동 길은 누구와 함께해도 어울린다. 광화문 동아일보 앞에서 시작되는 청계천도 운치를 느끼며 산책하기 좋은 코스다. 신문로 구세군회관 인근에는 서울역사박물관, 성곡미술관 등이 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아트홀 옆 떡볶이집’ 그냥 가면 서운하죠▼
○ 그래도 떡볶이는 먹어야!=충무아트홀 건너편에 있는 신당동 떡볶이 타운은 1950년대부터 신당동을 지켜 온 터줏대감이다. 과거 작은 가게들이 빼곡히 붙어있었다면 2002년부터 시작된 ‘M&A’ 바람으로 최근엔 대형 떡볶이 가게들이 들어섰다.
전문 파스타점이 흔치 않은 신당동 지역에서 ‘트레비’(2234-7338)는 오픈한 지 4개월밖에 안 됐지만 인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콩가루를 이용한 못난이 피자’가 잘 팔리는 메뉴다. 떡볶이로 유명한 신당동의 특성을 반영해 해물 떡볶이 메뉴도 있다.
동국대 맞은편에 있는 채식요리 전문점 ‘풀향기’(2265-1320)는 동국대 교수들의 단골 회식 집이다. 좌식 공간과 따끈한 온돌 덕에 일본인 관광객들도 좋아한다.
충무아트홀 관람객들에게는 ‘총각밥집&술&커피’(2236-0602)가 사랑받는다. 이 집의 단골은 개그맨 홍록기와 디자이너 최범석 씨로 오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영업한다. 주요 메뉴는 백반, 라면, 떡볶이 등이고 저녁엔 와인과 맥주도 마실 수 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홍어에 막걸리 한잔 “이 맛에 연기합니다”…배우들 뒤풀이 가보니
“내는요 아부지. 내는 아부지 없이 우예 살라고요?”(경숙·주인영)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서울문화재단 연습실에서 진행된 연극 ‘경숙이, 경숙 아버지’ 연습 현장.
비정한 아버지다. 아버지 역의 조재현은 혼자 피란을 가겠다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처자식을 구박한다.
잠시 뒤, 이번에는 조재현과 그의 애인을 가로챈 극중 ‘청요리’(이한위)의 맞대결 장면이다. 눈을 동그랗게 뜬 조재현의 표정 연기에 이한위가 ‘웃음보’가 터져 어쩔 줄 모른다.
3월 2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경숙이…’(박근형 작, 연출)는 지난해 동아연극상 작품상 등 연극계의 주요 상을 휩쓴 화제작이다. 독선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헝클어진 가족관계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김영필 고수희 황영희 등 극단 ‘골목길’ 배우 외에 영화배우 조재현, 탤런트 이한위,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장영남이 합류했다.
이들이 연습을 마치고 찾은 곳은 단골 회식 장소인 ‘이 몹쓸 그립은 사람아’(742-0113). 이곳은 막걸리에 홍어, 과메기를 주로 판다. 영화배우 문소리 박원상이 대학로에 나오면 자주 들른다고 한다.
꿀꺽꿀꺽, 구수한 막걸리가 몇 차례 목젖을 타고 넘는다.
“작년에 이 작품을 봤는데 만사 제쳐놓고 하고 싶더라고요. 극중 야박한 아버지가 배우 한다는 핑계로 가정에 소홀한 저랑 다를 게 없어요. 제 아버지께서 영화는 보셔도 연극은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꼭 모실 생각입니다.”(조재현)
“그렇게 말하면 ‘기자 선상’ 오해하겠다. 연기에 최선을 다하느라 가족을 제대로 못 챙길 때도 있다는 단서가 붙어야지.”(이한위)
술이 몇 순배 돌자 ‘골목길 접어들 때에…’라는 노래가 추임새처럼 흘러나왔다. 담근 지 100일된 솔방울 술은 독립영화감독 출신인 김재범 사장의 특별 서비스.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대학로의 향기다. 공연은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3시 6시. 1만5000∼3만 원. 766-3390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이번 주말에 볼 만한 공연▼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 무대에는 지금 어떤 공연들이 오르고 있을까? 현재 서울의 대극장은 모두 해외 뮤지컬들이 ‘점령’했다. 대학로에도 연극과 함께 아기자기한 소극장 뮤지컬들이 공연 중이다. <22·23면 ‘주말 오감만족 나들이’ 참조>
# 대학로
‘그 녀석의 아트’는 평소 연극을 즐겨 보지 않는 관객들도 재미있게 볼 만한 작품. ‘허연 판때기’를 걸작 ‘아트’라며 1억8000만 원에 사들인 친구와 두 고교동창 이야기. 오픈런으로 계속된다. 아트전용관 2만∼2만5000원. 764-8760.
‘굿바디’는 ‘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연극. 스스로 ‘굿바디’라고 생각하는 여성, ‘굿바디’가 갖고 싶은 여성, ‘굿바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여성, 그 누가 봐도 결말은 같다. 3월 14일까지. 두레홀. 2만∼3만 원. 3485-8700
‘쉬어 매드니스’는 관객이 세 용의자 중 살인범을 잡아내 결말을 결정하는 독특한 형식의 연극. 1부는 배우가, 2부는 관객이 만든다. 무기한. 대학로예술마당 2관. 1만5000∼3만 원. 744-4337
# 세종문화회관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프랑스 배우들이 노래한다. 프랑스 3대 뮤지컬 중 유일하게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로미오 앤 줄리엣’ 내한 공연이 한창. 초연 당시 오리지널 캐스트인 다미앙 사르그는 뮤지컬 마니아의 ‘영원한 로미오’. 2월 27일까지. 5만∼20만 원. 3141-8425
# 국립극장
영국 웨스트엔드의 해외 투어팀이 내한해 펼치는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공연이 해오름 대극장의 불을 밝히고 있다. 비지스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권할 만하다. 팔짱을 풀고 가볍게 몸을 흔들면서 보면 더 즐겁다. 흥겨운 커튼콜을 만드는 것은 관객의 몫. 3월 3일까지. 4만∼12만 원. 532-2188
#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24곡을 엮어 만든 뮤지컬 ‘올 슉 업’이 30일부터 시작된다. 조정석, 윤공주 등이 출연하는 최신 라이선스 뮤지컬. 올드팬에게는 향수를, 젊은 관객에게는 흥겨움을 선사한다. 4월 22일까지. 3만∼8만 원. 1588-5212. 소극장 무대는 비보이 공연 ‘마리오네트’의 열기로 뜨겁다. 3월 11일까지. 3만5000원. 3448-4340
# 예술의 전당
대극장은 발레 공연이 끝난 뒤 현재 공연이 없다. 토월극장에서는 창작뮤지컬 ‘천사의 발톱’이 공연 중. 선과 악을 상징하는 쌍둥이 형제 역을 한 배우가 1인2역으로 펼친다. 한국판 ‘지킬 앤 하이드’. 유준상 김도현 더블캐스팅. 3만5000∼6만 원. 764-8760
# LG아트센터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을 국내 제작진이 만들어 올린 라이선스 뮤지컬 ‘에비타’가 연말부터 공연 중. 이번 주말이 마지막 공연이다.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로 기억되는 뮤지컬. 배해선, 김선영, 남경주 등이 출연한다. 31일까지. 3만∼9만 원. 501-7888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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