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매력적인 악당들이 득세하는 시대다. 그중에서도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와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은 금세기 최고의 악당이라 할 만하다. 둘 다 마스크를 쓴 악의 화신이지만, 한때는 전도유망한 꽃미남이었다는 전력이 흥미롭다.
토머스 해리스의 최신작 ‘한니발 라이징’(창해)은 인육을 먹는 지적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의 유년 시절에 관한 프리퀄(첫 편 이전의 이야기)이다. 한니발의 이름 첫 글자만 바꾸면 ‘식인’을 뜻하는 ‘카니발(cannibal)’이 되는 것처럼, 평범한 소년이 내면의 악마성을 일깨우게 된 파란만장한 역경을 담고 있다.
본래 한니발은 완벽한 인간이었다. 그는 렉터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나 풍족한 생활을 영위했다. 두 살에 글자를 깨치고 여섯 살에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 원본’을 읽은 천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완벽한 인간에게는 불행이 뒤따르는 법. 제2차 세계대전 말 나치 잔당이 평화롭던 렉터 성을 습격해 한니발의 가족을 몰살한다. 한니발은 여동생 미샤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미샤도 처참하게 살육된다.
전쟁고아로 전락한 한니발은 보육원에서 온갖 차별과 폭행을 겪으며 지내다가 숙부인 로버트 렉터와 그의 일본인 아내 레이디 무라사키의 도움으로 프랑스로 간다. 열여덟 살로 장성한 한니발은 동생을 살해해 먹어 버린 나치 잔당들을 찾아내 차례대로 복수하기 시작한다.
21세기에는 악인이 개과천선하는 스토리보다 선인이 악당으로 변신하는 스토리가 훨씬 환영받는다.
정원에서 뛰노는 천진난만한 한니발과 인간의 뇌를 씹어 먹는 한니발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순간 독자는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악이란 인간의 본성인가 환경의 결과물인가. 달빛 속에 하이쿠를 읊는 낭만적인 청년도 한니발이요, 원흉을 살해한 후 숯불에 구워먹는 식인종도 한니발인 것이다.
한혜원 KAIST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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