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1970년대의 애니메이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로보트 태권브이’가 새 기법으로 보수돼 다시 개봉됐다. 흥행의 성패를 떠나 과거와 지금의 애니메이션 흐름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전반적인 성적표는 그리 좋지 않다. 영화 관객 1000만 명 시대에 이른 최근 10년간을 돌아볼 때, 한때 대미(對美) 수출 물량만으로 전 영화계의 매출을 능가했던 애니메이션 분야의 흥행 여건은 우울하다.
규모와 질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누리꾼은 포털사이트에서 아바타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매일 만나고 즐기며 산다. 그뿐인가. 디지털 콘텐츠 관련 기관이 많이 생겨났고, 예전의 문화 상식으로는 개념조차 알기 어려운 관련 행사가 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에는 170여 개의 대학과 고교에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가 있다. 멀티미디어나 컴퓨터 관련 학과까지 치면 훨씬 많을 것이다. 관련 학교가 10개가 안 되는 ‘만화 왕국’ 일본과 대조적이다.
급속한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전망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왜일까. 두 가지 이유를 든다면 ‘우수한 인력이 직업을 찾기 어려운 현실’과 ‘중복투자 또는 하향평준화를 낳는 나눠 주기 지원정책’이다.
전자는 젊은 세대의 미래를 위한 비전의 부재에서 나온 현상이고, 후자는 단기 실적을 과시하기 위한 정책 때문에 나온 부작용이다.
애니메이션은 ‘종합 예술’이라 일컫는 영화보다도 여러 매체와 분야를 융합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야기, 그림, 소리, 컴퓨터 테크놀로지 전반에 걸친 이해가 없으면 연출하지 못한다. 다행히 정보기술(IT) 강국의 면모를 갖춘 한국의 문화 경제적 상황은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요구할 수준에 이르렀다.
애니메이션이 고전적인 만화영화를 넘어 미술 문학 음악 공연예술과의 조우를 시작하면서 가능성과 기회를 발견한 것이다. 한국은 이미 세계 문화에 밝고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젊은 층을 갖고 있다. 이 인력이 애니메이션과 관련해 미래를 맡길 곳은 어디 있는가?
누구나 잘 아는 ‘월트디즈니’를 생각해 보자. 애니메이션은 탁월한 창의력을 가진 한 사람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일이다. 그 한 명의 한국인을 어디서 만들겠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혹자는 ‘당면 과제 및 형평성 논리’를 내세우는데, 애니메이션 분야의 경쟁력은 집단의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단 한 명의 창의력 있는 인재를 발굴할 수 있는 최선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막대한 외자 유치에 성공한 일부 캐릭터 프로젝트의 사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쓸데없이 수만 너무 많다”고 비아냥거림을 당하던 관련 학과의 졸업생과 숙련된 현장 인력의 성공적 결합에서 나왔다.
젊은 세대를 위한 ‘국제 페스티벌’의 장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외국의 행사를 자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 페스티벌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국제 문화 교류 행사가 많아야 한다.
이를 통해 글로벌 마켓을 일찍 개척할 수 있고, 젊은 세대의 문화적 자양분이 튼튼해질 수 있다. 이것이 희망이다.
박세형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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