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결과 보니까요, 네 편 내 편 할 것 없이 전부 잘못했다고 곱표 쳐놨는데… 터질 건 터지더라도 다르게 할 건 다르게 하겠다 이겁니다.”(노무현 대통령)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라고 말하는 여론조사는 필요가 없다. 당선된다면 대중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국정을 수행하지는 않을 것이다.”(미국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
1824년 존 퀸시 애덤스와 앤드루 잭슨이 맞붙었던 미국 7대 대통령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첫선을 보인 후 만인이 동의하는 여론조사는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다. 2002년 ‘사상 유례없는 정치 쇼’라는 얘기까지 들으며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해 대통령에 당선됐던 노 대통령이나 국민 70%의 지지를 얻어 이라크전쟁을 내질렀던 부시 대통령마저 여론조사를 냉대하는 현실이니 말이다.
이렇게 사방이 적이니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항변이 필요했을 법하다. 미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의 프랭크 뉴포트 편집장이 총대를 메고 ‘여론조사 구하기’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여론조사를 우습게 아는, 대중을 깔보는 세상의 모든 ‘영웅’과 ‘엘리트’를 향해 던지는 일갈이다.
그러나 그 칼끝은 매섭다. 어느 침대 광고처럼 단순히 “여론조사는 과학입니다”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대중에 대한 신뢰를 담아 직접민주주의의 구현체로서 철학적 배경과 이론을 들이대며 여론조사를 우습게 여겨 온 이들을 압박한다.
저자에게 있어 여론조사는 권력과 자본을 독점해 온 특권층과 엘리트에게서 사회적 헤게모니를 대중에게 돌려주는, 그래서 거대 국가 체제 속에서 ‘이상’이 되어 버린 직접민주주의를 간접적으로 구현하는 ‘메시아’다. 그래서 “개인 각자의 경험과 지식의 총량은 진리의 근원이며, 소수의 경험과 지식에서 나온 대안보다 더 심오하다”는 그의 주장은 ‘빛’이요 ‘진리’가 된다.
하지만 순순히 물러날 ‘파워 엘리트’들이 아니다. 대중에 대한 그들의 불신은 뿌리 깊다. 미국 건국의 시조들은 여론에 동요하고, 일시적 오류와 착각에 빠지기 쉬우며, 과격한 정치운동에 나서는 대중을 우려했다. 그뿐이랴, 저명한 시사평론가 월터 리프먼은 저서 ‘환상의 대중’을 통해 “유권자들이 공공의 문제에 영향을 미칠 만한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공상”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1999년 공화당 의원들이 빌 클린턴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그의 여론조사 숭배 성향을 빗대 “리더십이란 스스로 즉, 여론조사에 의존하지 않고 결정을 내린다는 뜻이다”라고 비아냥댔을까.
이 책은 또 여론조사의 과학성에 대한 논증서이기도하다. 특히 논란이 되는 무작위에 의한 표본추출 방식은 여론조사 공격수들이 노려 온 ‘약한 고리’였다. 저자는 어떻게 1000명 안팎의 소수가 수백 만, 수천만 명을 대변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2002년 미 중간선거 당시 갤럽은 지역 나이 성별 인종 등 표본 크기에 도달할 때까지 전화번호를 추출해 1221명을 골랐다. 그리고 투표 여부와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 묻는다. 이 중 투표를 하겠다는 1061명을 골라 다시 투표 참여 가능성이 가장 높은 715명에게 가중치를 부여한다. 그들의 투표 성향은 공화당 51%, 민주당 45%. 그럼 투표 결과는? 51.7% 대 45%였다. 당시 유권자는 7500만 명.
이 책을 읽으면서 구절마다 한국의 상황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저자가 만난 한 정치인의 얘기는 더욱 그렇다. “그는 대중의 의견이나 자신이 특정한 소수에 속한다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수하는 정치인으로 자기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그는 당선된 적은 별로 없지만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을 즐겼으며 집단의 의견을 무시하고 ‘선(善)’을 위해 홀로 싸웠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충고한다. “설득하고 이해시켜라. 그러나 만일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고 지도자의 지혜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지도자가 물러서야한다”고….
자신이 늘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들, 어리석은 대중에 안타까워 눈물 흘리는 우국지사들, 현재보다는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고 호언하는 영웅들,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았는지, 아니면 국민의 단순 대리인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선량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원제 ‘Polling Matters’(2004년).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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