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렬“근현대사 이념적 문제 성급하게풀면 오히려 꼬여…”

  • 입력 2007년 1월 27일 03시 11분


25일 경기 과천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만난 유영렬 국사편찬위원장은 근현대사에 대한 시각차는 학문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천=신원건 기자
25일 경기 과천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만난 유영렬 국사편찬위원장은 근현대사에 대한 시각차는 학문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천=신원건 기자
역사가 전쟁터로 자리 매김한 시대, 역사의 이데올로기화가 심화되는 시대에 한국사의 연구 편찬을 담당하는 국사편찬위원회는 별 말이 없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실시, 각종 시험의 국사과목 채택 등 한국사 교육 강화에만 총력을 기울여 온 듯한 인상이다. 정중동(靜中動)이라 할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25일 유영렬(66) 위원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대외에 비친 위원회와 유 위원장의 이미지가 일치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중용(中庸)’과 ‘내실(內實)’, 그것이 유 위원장의 스타일이었다.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유 위원장은 현대사의 해석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거친 논란에 대해 ‘사료의 검증을 통한 철저한 학술적 논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교육 강화를 위해 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를 모색 중이다. 첫째는 지난해 11월 실시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1만5400여 명이 응시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올해는 5, 10월 두 차례에 걸쳐 1, 2급을 포함해 전 등급에서 실시된다. 시험이 정착돼 여러 업체나 공무원시험에서 토익처럼 인증자격시험이 된다면 한국사 공부의 붐이 일 것이다. 두 번째는 역사교육정보통합시스템 구축이다. 재미있고 중요한 역사 콘텐츠를 총망라해 통합시스템을 만들면 국민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역사에 관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 산하 교육혁신위원회에서 국사를 포함한 교과서의 검인정제 전환을 의결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검인정으로 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 논란에서 보았듯이 역사를 보는 시각차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검인정제는 학생들에게 혼란과 막중한 부담을 줄 수 있다. 시험에 대비해 6개 교과서를 다 공부하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교육인적자원부에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자나 교육부의 인식은 비슷하다.”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70주년 행사에 맞춰 올해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을 대상으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국민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을 보고 700만 명의 재외동포에게 우리의 역사와 발전상을 알리고 한민족의 자긍심과 친근감을 갖게 하자는 취지로 계획했다. 먼저 카자흐스탄을 고른 이유는 스탈린의 이주 정책 때 많은 동포가 그곳으로 갔고 정착에 성공한 고려인이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본과 미국 등 교민이 많은 지역에 확대 실시할 예정이다.”

―올해는 1907년 헤이그특사파견 100주년, 1987년 민주화 20주년, 1997년 외환위기 10주년의 해다. 위원회 차원의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러시아고려인협회와 공동으로 국제학술회의를 준비 중이다. 또 수년 전부터 해외에서 한국 민주화 관련 자료를 많이 수집해 왔다. 2005년 그동안 모은 자료 2000쪽으로 ‘민주화운동목록집’을 만들었다. 금년에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당시 대학가에 유포됐던 비디오테이프 원본을 미국에서 입수했다. 일본 TV와 독일 TV 방영분이다. 5월 광주민주화운동 행사에 맞춰 공개할 예정이다. 이외에 한국사 관련 자료를 300만 점 정도 모았다.”

―참여정부 들어 역사청산 관련 위원회가 19개에 이르면서 역사가 지나치게 정치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역사학자로서 과거사에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 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보는지.

“(위원회들은) 근현대사에 미완의 문제가 많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본다. 다만 각 위원회의 사업이 정치화될 수 있지 않으냐는 우려를 알기 때문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않겠는가. 우리 역사의 정치화나 이념적인 문제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데 이런 것을 너무 성급하게 풀면 더욱 엉켜서 풀 수 없는 단계까지 갈 수 있다. 역사적 시각을 서로 존중하고 토론하고 연구하며 학문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 학문 연구에 시각차는 당연하고 시각차가 있어서 학문 연구가 발전할 수 있다. 다만 시각차가 이념적 차이에 기반을 두고 진행되면 문제가 있다. 올바른 사료에 근거해 논쟁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적인 논쟁이 아니겠는가. 뉴라이트 교과서 문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고 학문적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이론은 ‘실력양성론’ ‘무장투쟁론’ 크게 두 가지였다. 두 노선 중 어느 쪽이 우선되어야 했을까.

“그 당시 한쪽에서는 ‘일제의 강력한 힘에 맞서려면 실력 양성을 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제의 힘 밑에서 우리가 언제 힘을 길러 맞서나, 승패를 떠나 싸워야 한다’는 시각이 있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자는 것이 신민회 노선이었다. 국내에서는 실력 양성을 하고 국외에서는 독립군을 조직해 양자가 동시에 일본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전쟁할 때 합세해 독립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어느 한쪽이 중요하고 다른 한쪽이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은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둘 다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 현대사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어떻게 봐야 하나.

“근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화를 유보해 경제성장에 집중했고 일정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것이 근대화의 맥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발전을 위해 민주화를 누르는 권위주의적 근대화 일변도가 잘된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유보시킨 민주화를 되찾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화와 근대화 모두 일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역사학계 일각에선 세계화시대에 맞춰 국사와 세계사의 통합교육을 요구한다. 이에 대한 견해는….

“과거 독재자들이 역사를 권력에 이용했고 혹은 약소국이 국민정신을 통합하기 위해 국사를 강조한 적이 있었다. 국수주의와 제국주의는 잘못된 민족주의의 변종이었다. 이웃과의 선린주의, 세계주의와 악수할 수 있는 민족주의가 진정한 민족주의다. 일각에서는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는다고 세계화의 상징이라며 비난한다. 그러나 김치를 세계화해 외국인이 먹도록 하면 이것이 또한 세계화다. 선진문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세계화고 우리의 것을 세계에 알리는 것도 세계화다. 따라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발전시키고 알리는 것은 세계주의의 역행이 아니며 올바른 세계주의가 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무국적 세계주의는 세계주의로의 함몰이라고 본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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