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목소리' 찾아 헤맸던 나주봉 씨

  • 입력 2007년 1월 31일 16시 02분


1991년 이형호 군 유괴피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그놈 목소리'의 개봉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실제 '그놈'을 찾기 위해 수년 간 전국을 헤맸던 '미아·실종가족찾기모임' 회장 나주봉(50)씨의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나씨가 실종 가족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이른바 `뽕짝' 테이프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나씨는 1991년 7월 인천 월미도에서 아이를 찾아달라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던 개구리 소년의 부모들을 만나게 됐다.

자신도 한때 가족을 잃었다 되찾은 아픈 경험이 있던 터여서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던 나씨는 `어차피 떠도는 신세니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개구리소년 가족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개구리 소년 부모들과 1년 이상 전국을 헤매며 전단을 뿌려도 사건 해결 기미가 없자 나씨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이형호 군 유괴사건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놈 목소리'가 있는 이형호 군 사건의 범인을 잡으면 비슷한 시기 발생했던 개구리소년 사건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차려진 이형호 군 유괴사건 수사본부를 찾아가 범인의 협박 육성이 담긴 테이프와 필적 자료 사본을 얻어온 나씨는 당시 수 천만 원의 자기 돈을 들여 '그놈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 7만3000개를 만들어 전단과 함께 전국에 뿌렸다.

수사에 진척이 없어 답답해하고 있던 경찰들은 각설이 분장을 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건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나씨의 노력을 신기하고 '가상히' 여기며 '각설이 탐정'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개구리소년과 이형호 군 사건 전단을 전국에 돌리면서 많은 미아 부모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게 된 나씨는 2001년부터는 노점에서 옷을 파는 아내에게 생계를 맡긴채 '미아·실종가족찾기모임'을 만들어 실종자 찾기운동에 전념하게 된다.

수많은 '그놈'을 찾아 헤매던 나씨에게 오는 2월 1일 개봉하는 영화 '그놈 목소리'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나씨는 지난해 이형호 군 사건을 영화로 만들어보겠다며 찾아왔던 '그놈 목소리' 제작진에게 당시 배포하고 남아있던 테이프과 범인 필적 자료를 건네줬다.

영화를 만든 박진표 감독은 "나씨에게 받은 테이프의 내용도 귀중한 자료로 받아 썼다"며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나씨와 실종자 가족들은 이 영화의 개봉에 맞춰 개구리소년, 이형호 군, 화성연쇄살인사건 같은 장기 미제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운동에 나섰다.

이들이 '그놈 목소리'를 제작한 영화사와 함께 만든 온라인 수사본부(http://www.wanted1991.org)에는 3만4000명의 누리꾼이 벌써 다녀가 공소시효 폐지에 동의하는 온라인 서명에 동참했다.

나씨는 "'그놈 목소리'가 사건을 너무 상업화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아플 뿐"이라며 "이 영화를 통해 다신 이런 범죄가 없어지기를 바라고 범인이 만약 영화를 본다면 이제 처벌도 받지 않을 터이니 자수하고 죄를 뉘우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 '살인의 추억'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혀있던 화성 사건을 다시 끄집어냈다"며 "이번 영화를 통해 미아와 실종자 찾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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