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는 인간의 맹목적인 습성에 경악한다. 은행직원이 수표를 먹지 않은 것에 놀라고 나 이전에 어떤 화가도 흐물거리는 시계를 그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천재를 열망하는 세상을 향해 ‘나는 천재이다’라고 깜짝 선언한 화가가 있다. 바로 초현실주의 스타 화가인 달리이다.
독자여, 그대가 설령 미술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혓바닥처럼 축 늘어진 달리의 시계는 기억하리라. 치즈처럼 물렁한 달리표 시계는 미술교과서와 상업광고에도 단골로 등장하니 말이다. 달리가 흐느적거리는 시계를 개발한 덕분에 시계처럼 정확한 인간이 되기를 갈망한 사람들은 긴장감을 떨치고 한결 여유를 갖게 되었다. 아울러 시간은 정확하고 견고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도 해방되었다.
그렇다면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에게 원초적 시계를 선물한 달리를 천재로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사실 천재라는 단어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단어는 드물다. 과연 천재는 어떤 사람일까? 백과전서의 저자이자 프랑스 사상가인 디드로의 입을 빌려 천재를 정의해본다. ‘정신의 확장, 상상력, 영혼의 활달함, 그것이 천재이다.’
디드로의 이론에 따르면 달리는 분명 천재이다. 그는 엄청난 상상력과 샘물처럼 솟는 아이디어, 기발한 발상으로 사람들의 잠든 의식을 단숨에 깨우곤 했으니까.
그런 달리가 자신의 독특한 예술관, 사랑, 인생, 속내를 파격적으로 털어놓은 책이 지금 소개할 ‘살바도르 달리’이다. 그는 이 자서전에 아이처럼 치졸한 발상과 불경스럽도록 자유분방한 성의식, 편집광적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천재성을 뽐내는 이기주의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허풍쟁이 달리라고 흉보지 말자. 왜? 그것이 곧 천재예술가의 특권이니까. 생각해 보라. 만일 자아에 대한 확신, 혹은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토록 지나친 열정을 가지고 미친 듯 예술에 몰입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시인 장 콕토는 ‘천재는 자신과 사랑에 빠진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흔히 세 살에서 일곱 살까지를 창조성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불꽃같은 열정으로 세상을 공부하고 농축된 호기심과 탐구심을 자양분 삼아 창의성과 상상력을 활짝 꽃피우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달리는 영원한 아이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던 도중 소설 양철북과 영화 아마데우스가 머리에 스쳤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는 위선과 증오로 가득 찬 세상을 거부하고 속물적인 삶에 오염되지 않기 위해 세 번째 생일날, 자신의 의지로 신체적 성장을 멈춘다. 그리고 그는 영원한 아이로 살아가는 운명을 선택한다. 한편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는 천재성 대신 천재를 알아볼 능력만을 준 신을 저주하며 열등감의 원천인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이끌며 그 또한 파멸의 길을 걷는다.
독자여, 만일 그대가 영원한 아이이며, 천재인 달리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꿈을 일상으로, 일상을 꿈으로 변형시킨 위대한 연금술사의 자서전을 꼭 탐독하기 바란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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