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63>大信不約

  • 입력 2007년 2월 7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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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개성상인은 장사를 할 때 계약서를 주고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신용이란 너무나 중요하므로 구차하게 종이쪽지로 표현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약속을 해놓고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하는 삶은 피곤하다.

‘大信不約(대신불약)’이라는 말이 있다. ‘大’는 ‘크다’라는 뜻이다. ‘大勇(대용)’은 ‘큰 용기’이고, ‘大戰(대전)’은 ‘큰 전쟁’이다. 흔히 ‘올바른 사람이 걸어야할 길’이라고 묘사되는 ‘大經大道(대경대도)’는 ‘큰 이치와 큰 도리’라는 말이다. 이 경우의 ‘經’은 ‘이치, 법도’라는 뜻이다. ‘信’은 ‘믿다, 믿음, 신용’이라는 뜻이다. ‘信義(신의)’는 ‘믿음과 의리’라는 뜻이다.

‘不’은 부정하는 말이다. ‘不遜(불손)’은 ‘공손하지 않다’라는 말이다. ‘불우 이웃 돕기’라는 말의 ‘不遇(불우)’는 ‘만나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遇’는 ‘만나다’라는 뜻이다. 이 경우의 ‘만나지 못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 혹은 ‘적절한 환경’이거나 ‘적당한 시기’이다. ‘不遇靑少年(불우청소년)’은 ‘사랑하는 사람, 즉 부모를 만나지 못한 청소년’이거나 ‘적절한 환경을 만나지 못한 청소년’이라는 말이다. ‘不遇한 예술가’는 ‘적당한 때를 만나지 못한 예술가’라는 말이다. ‘約’은 ‘약속하다’는 뜻이다. ‘約束(약속)’은 ‘약속하여 묶어놓다’라는 말이다. ‘束’은 ‘묶다’라는 뜻이다. 사람이 약속을 하면 그것에 묶이게 되므로 이런 말이 생겼다.

이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大信不約’은 ‘큰 믿음은 약속을 하지 않는다’, 즉 ‘위대한 믿음, 위대한 신용을 주고받는 사이에서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된다. 왜 그럴까? 위대한 믿음, 위대한 신용은 타인이 아니라 이미 자기 자신과 소리 없이 약속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기 자신을 속이고 버리게 된다. 세상사람은 이런 위대한 믿음, 위대한 신용을 지키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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