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옛 이야기 같은 연극 ‘용호상박’(오태석 작·연출)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2005년 초연에 이은 2년 만의 공연이다.
‘오태석 연극’은 그의 연극 문법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겐 난해하기로 악명(?) 높지만, 이 작품은 예전 작품과는 달리 쉽고, 짧고(1시간 20분), 재미있다. 극 중 호랑이는 사람과 말을 섞기도 하고, “저기 나보다 더 무서운 짐승이 왔네”하며 곶감 하나 툭 던져 놓고 사라진다. 마치 노(老)연출가가 사랑방에서 손자뻘 관객에게 “동기간엔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한다”며 구수하게 들려주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이야기 같다.
단원들과 연습을 마치고 난 연출가 오태석 씨는 술 한잔 걸친 뒤 껄껄대며 “그동안 하도 정신병원 가 봐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이 작품으로 아니라고 얘기해 보려고…” 하고 농을 던진다.
‘용호상박’은 경북 포항시 강사리 마을에서 유래한 ‘범굿’을 모티브로 한 작품. 대를 이어 ‘범굿’을 주재해 온 집안에서 범굿을 둘러싼 형 팔룡과 동생 하룡의 갈등을 통해 형제간의 우애를 그렸다.
“왜 어른들은 그러잖아요, 형제간 우애가 제일 중요하다고. 같은 자궁에서 나온 형제끼리 잘 지내야 한다, 옛 어른들이 우리에게 일러주셨던 그런 얘기를 지금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었죠.”
초연 당시 10년 만에 나온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작으로 뽑혔던 ‘용호상박’은 평단으로부터 “형제간의 다툼에서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 조국의 현실까지 짚어낸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에 대해 오 씨는 “에이, ‘쪼잔하게’ 민족끼리의 ‘우애’에만 그치지 말고, 기왕이면 인류 모두라고 봐 달라”며 또다시 껄껄 웃는다.
‘어른들을 위한 우화’ 같은 이 작품은 목에 힘주지 않고 주제를 극 속에 녹여 냈다. 거창한 인류애로 읽어도 좋고, 단순히 옛날 옛적 팔룡 하룡 형제의 이야기로만 봐도 그만이다.
“노화가의 바보 산수처럼 조물조물 휘적휘적 만지고 그려낸 자연스러움, 단순함과 달관의 유머가 고졸미(古拙美)의 경지에 이르렀다”(평론가 김방옥)는 평처럼 술술 풀어나간 이야기는 결말에 죽음을 품고 있음에도 무겁지 않고 산뜻하게 끝을 맺는다.
초연 때 형 팔룡 역을 맡아 감칠맛 나는 연기로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전무송 씨도 이번 무대에 그대로 출연한다.
17∼25일. 월, 토, 일요일은 모두 2차례씩 공연한다. 남산드라마센터. 1만∼3만 원. 02-745-3966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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