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집-맛의 비밀]제주시 ‘흑돼지가 있는 풍경’

  • 입력 2007년 2월 10일 02시 54분


흑돼지 생구이 1인분(200g) 1만 원.
흑돼지 생구이 1인분(200g) 1만 원.
도새기(돼지), 자릿 도새기(새끼 돼지), 돗도그리(돌로 된 돼지 먹이통), 통시(돼지우리와 연결된 화장실)….

돼지와 관련된 제주도 사투리다.

이른바 ‘제주도 똥돼지’의 유래와 기막힌 맛은 전국으로 퍼져 온 국민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위생 문제가 부각되면서 통시는 사라졌다. 이제 제주산 흑돼지는 전국에서 가장 ‘깨끗한’ 돼지가 됐다. 정해(丁亥)년 돼지해에 ‘지리적 표시제’의 주인공이 된 것.

이 제도는 단순한 원산지 표시와 달리 보성 녹차나 의성 마늘처럼 농산물의 품질이 특정 지역의 지리적 특징임을 보증하는 것이다. 축산물로는 제주 흑돼지가 강원 횡성의 한우고기와 함께 처음으로 선정됐다.

제주시 연동 ‘흑돼지가 있는 풍경’(064-742-1108)은 제주 사람도 구경하기 쉽지 않다는 토종 흑돼지 전문점이다.

○ 주인장(고성학 씨·38)의 말

제주 사람도 진짜 제주 흑돼지를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껍질을 보는 겁니다. 털구멍마다 세 가닥 털이 보입니다. 꼭 논에 모내기한 것처럼 보여요(웃음).

흑돼지는 제주의 자연환경이 준 선물입니다. 1984년 전국소년체전으로 화장실 개량 사업이 대대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통시를 사이에 두고 사람과 흑돼지가 공존하는 모습이 바로 제주의 풍경이었죠.

돼지가 둔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돼지는 성격이 예민해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바람이 잘 통하고, 공기가 좋고, 물이 깨끗한 곳에서 자란 돼지가 맛있죠. 사람과 다를 게 없어요.

육질은 7∼9개월(95∼105kg)된 거세 수퇘지가 최고입니다. 생후 일주일쯤 될 때 거세합니다. 안된 얘기지만 정(情)을 아예 모르게 하는 겁니다. 근데 이게 묘해요. 암퇘지는 아무래도 고기 맛이 덜합니다. 아마 수퇘지 생각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영양분이 빠지고 고기질도 나빠지는 것 같습니다.

숙성과 보관이 우리 집 비법입니다. 물론 좋은 고기는 기본이지요. 영하 30도에서 4, 5시간 숙성한 뒤 영하 1, 2도에서 비닐로 싸 하루를 보관합니다. 바깥 공기가 들어가면 고기의 수분이 빠져 맛이 떨어집니다.

○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객=고기 맛을 사람에 비유하니까 좀 어색합니다.

▽주인장=그렇긴 하죠. 그런데 사실 사람도 그렇게 살아야 ‘때깔’이 좋던데….

▽식=고기에 2mm 간격으로 촘촘하게 그물 모양의 칼집을 내던데요.

▽주=고기에 있는 신경조직을 끊어주는 겁니다. 그래야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고기를 익힐 때 껍데기, 살, 기름이 익는 속도가 비슷해집니다. 고기가 다 익었을 때 꽈배기 모양으로 틀어져 먹기도 편하고 보기에도 좋습니다.

▽식=이틀 지난 고기는 취급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까.

▽주=보관을 잘해도 시간이 지나면 고기는 수분이 빠져 맛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남은 고기는 찌개나 다른 용도로 쓰시라고 손님에게 나눠드리죠.

▽식=고기는 부드럽고 껍질은 쫀득하네요. 멸치 액젓 소스와의 궁합도 정말 좋습니다.

▽주=제주에서는 옛날부터 멸치 액젓을 밥솥에 넣어 졸인 뒤 고기를 찍어 먹었죠. 멸치 액젓에 소주, 생강, 마늘을 넣고 끓인 뒤 멸치 잔뼈를 뺍니다. 김이나 새송이에도 싸 먹어보세요. 쌈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 납니다.

제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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