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의 만화방]호문쿨루스

  • 입력 2007년 2월 10일 02시 59분


야마모토 히데오의 ‘호문쿨루스’는 기괴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오컬트적 기술과 현상으로 영적 능력을 지니게 된 주인공이 등장한다. 일본 만화의 무수한 퇴마사처럼 그 역시 사람의 몸에 붙은 괴물과 맞선다. 그런데 여느 작품처럼 초인적 힘으로 영적 괴물과 싸우지 않는다. 주인공 나카시가 지닌 능력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괴물, 즉 호문쿨루스를 볼 수 있는 것뿐이다.

인기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도 등장하는 호문쿨루스(homunculus)는 라틴어로 작은 인간이란 뜻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호문쿨루스는 인조인간 또는 복제인간의 의미였다. 중세의 연금술사이자 의사였던 파라켈수스가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반면 이 만화에서 호문쿨루스는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억압이나 정신적 상처를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귀신 또는 귀신에게 몸을 빌려 준 사람이다. 주인공 나카시는 머리에 구멍을 뚫는 트리퍼네이션(trepanation·개공술) 수술을 받은 후 여섯 번째 감각(six sense)이 열리게 된다. 그 후 한쪽 눈을 감고 사람을 보면 기괴한 형상의 기호로 이루어진 괴물에게 몸을 빼앗긴 사람을 볼 수 있게 된다. 온몸이 로봇의 형상으로 보이는 야쿠자 두목, 모래알처럼 자잘한 문자로 보이는 탈선 여고생 등.

위기를 볼 수 있는 능력만 있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군중을 위협하는 위험도 아니고 그저 한 개인의 정신적 상처가 스스로를 위협하고 있을 뿐이다. 현대적 개념의 퇴마사인 나카시가 이 괴물과 싸우기 위해 찾아낸 방법은 일종의 상담치료법이다. 자신도 경험했던 비슷한 일화를 이야기해 줌으로써 상대를 특수한 고립의 상태에서 해방되게 돕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귀신 들린 사람을 위한 멘터 같기도 하다.

만화가 야마모토는 작품을 통해 늘 인간의 두 얼굴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반된 모습, 겉모습과 다른 성격, 나와 다른 분신 등을 이항 대립 관계로 내세운다. 그리고 둘의 경계에 선 자가 동질성이라는 깨달음을 찾도록 한다. 타인의 정신적 상처나 괴물을 복제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문쿨루스라 명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너의 상처가 내게도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자극적이고 잔혹하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그간 국내에 소개되지 못했다. 야마모토는 일본 문화계의 숨은 진주를 찾던 영화감독 이규형의 칼럼을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초기 작품인 ‘신·노조키야’와 ‘고로시야 이치’를 소개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작가의 만화는 너무 잔혹하지만 그런 것이 흉이 되지 않을 만큼 재밌다’이다. 그리고 이런 만화가 출판되고 더군다나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영화로까지 제작되는 일본 문화에 대한 경외감을 표했었다. 그 작가의 최신작이 국내에서 동시 발매되고 있는 셈이니 우리 만화계의 표현 수위와 독자들의 눈높이도 달라진 셈이다.

박석환 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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