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백창일 ‘네 눈동자’

  • 입력 2007년 2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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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동자 - 백 창 일

봉숭아 한 꽃송이에게 눈길을 주라

무논을 채우고 있는 청개구리에게 눈길을 주라

저기 아장대는 아이에게 눈길을 주라

한 줌의 흙에서

봉숭아가 그 순정한 꽃잎을 피울 수 있었던 까닭은

누군가의 눈길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속눈길을 받는 순간

그의 품속에 들어가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다

네 눈동자 속에 저들의 빛깔이 있다

네 눈동자가 결국은 저들의 삶의 길이다

우리 서로 눈길을 거두었던 지난 세월을 보라

타는 눈빛이었다, 서로의 가슴에 불무질일 뿐인

불타는 세상이었다

봉숭아 한 꽃송이에게 눈길을 주라

눈보라 속을 날아가는 철새에게 눈길을 주라

우리는 서로

그 누군가의 눈길을 받아야 이 세상에 닿는다

시집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시와시학사) 중에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새삼 알겠다. 내가 피는 것은 네 눈길 때문이요, 네가 피는 것이 내 눈길 때문이로구나. 그러니 저 꽃이 곧 나요, 내가 곧 저 잎이로구나. 나는 너를 통하여, 너는 나를 통하여 하늘에 닿는구나. 우리는 모두 관계 속 존재들이니, 서로를 보듬는 눈길이 없다면 누가 제 생을 위무 받을 것인가. 뺨에 부딪는 바람과 구름과 꽃잎과 이웃의 눈길을 느껴 보라. 그리고 눈길에 눈길로 보답하라. 눈길은 아무리 주고받아도 붐비지 않는다.

-시인 반 칠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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