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인간은 진화적 동물!… ‘다윈의 대답’

  • 입력 2007년 2월 24일 03시 00분


◇다윈의 대답(1∼4)/피터 싱어 외 지음·최정규 외 옮김·각권 96∼148쪽·6500∼7500원·도서출판 이음

《인간의 본성에 눈감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 인간이 위계를 형성하려는 경향을 갖는다고 말할 때 그것이 우리 사회가 위계에 기반을 두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특정한 위계를 제거한다고 해서 위계 일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상기시켜 준다.》

‘불편한’ 진실은, 진실이라고 한들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진실이 불편한 데다 비윤리적이기까지 하다면 적대감은 더 커진다. 사람들은 쉽게 ‘진실이 아니다’라며 외면해 버리기 일쑤다.

인간 행동도 동물과 다를 바 없이 생물학적 진화 법칙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진화생물학과 사회생물학이 바로 그런 진실 중 하나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한 세기 반 만에 다윈주의는 사회학과 인류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윈주의는 강자는 약자를 쓰러뜨릴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했다거나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옹호한다는 비난에 줄곧 직면해 왔다.

이 시리즈는 진화생물학이 무자비한 경쟁과 차별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대한 서구 다윈주의자들의 답을 담았다. 1999년 미국 예일대 출판부가 출간해 화제를 모았던 ‘다윈주의의 오늘(Darwinism Today)’ 시리즈 중 일부를 번역했다. 4권의 책은 정치학과 성(性) 연구, 가족학,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의 다윈주의를 다뤘지만 관통하는 전제는 하나다.

다윈주의는 ‘인간이 윤리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다’의 영역에 놓여 있다는 것. 저자들은 다윈주의가 다루는 사실(fact)에서 가치(value)를 유추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특히 1권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의 저자인 피터 싱어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석좌교수의 주장은 곱씹어볼 만하다. 그는 사회체제를 바꾸면 인간 본성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좌파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한다. 실제로 현실 사회주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윤리적 이유로 외면한 탓에 한 세기 만에 몰락하고 말았다. 싱어 교수는 인간은 진화해 온 동물이며 인간의 행동은 유전적 기초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좌파가 신중히 받아들일 때가 됐다고 말한다.

3권 ‘남자 일과 여자 일은 따로 있는가?’는 보다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 저자는 성차(性差)가 인간 진화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이 선택한 상이한 생식 전술의 결과라고 말한다.

교미를 중시하는 수컷은 양육을 중시하는 암컷과 달리 많은 상대와 성관계를 가져 생식 성공률을 높이게끔 진화해 왔다는 것. 수컷이 화려한 꼬리와 무성한 뿔을 지니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도 다를 게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남성은 화려한 꼬리와 뿔 대신 더 높은 지위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고위직에 많은 까닭이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지 성차별 때문이 아니라는 ‘민감한’ 주장으로 귀결된다.

4권 ‘낳은 정과 기른 정은 다른가?’는 동물 무리에서 핏줄로 묶이지 않은 가족 구성원이 가혹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의붓부모는 의붓자식을 차별한다는 주장이 실려 있다. 2권 ‘왜 인간은 농부가 되었는가?’는 농업의 발견이 생태계 파괴를 가져왔다는 인류학적 분석을 담았다.

저자들의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가부장적 사회구조는 성차의 결과이지 성차의 원인은 아니라는 주장은 페미니스트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저자들은 유전자가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저자들의 주장이 논쟁의 결론이 아닌 실마리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각 권마다 10∼20쪽에 이르는, 다소 긴 옮긴이의 해설은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논쟁까지 소개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책을 펴낸 ‘이음’은 386세대 생태학자와 과학사학자, 진화경제학자 등 6명이 과학지식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며 만든 출판사로 이 시리즈가 첫 작품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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