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시험의 질문은 폭이 넓다. 질문의 길이가 짧고 주제 집중도가 높다. 제시문이 있더라도 방향을 암시하거나 간단한 조건을 주는 정도다. 그래서 답변의 가지가 뻗을 공간이 그만큼 여유롭다.
생각의 치마폭이 넓을수록 나만의 독창성은 더 잘 드러난다. 내가 고민했던 문제, 읽었던 자료들이 고스란히 껍질을 벗는다. 내면에 쌓아온 생각의 결을 평가받는 순간이다.
돌덩이를 깎아 숨어 있는 빛을 뽑아내면 멋진 보석이 되듯, 매번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도 각을 잡으면 한결 근사해진다. 말없는 나의 집을 생각의 놀이터로 만들어 보자. ‘집’을 통해 다면적으로 사고하는 법,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우선, 제목부터 다시 보자. 이 집이 누구냐고? 저자는 집에서 삶의 흔적을 읽는다. 살면서 느낀 기쁨, 아픔, 아쉬움 등을 떠올려 보라. 모두 다 집이라는 공간 안에 포개진다. 실향민들이 고향 산천과 비슷한 곳에 집터를 잡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생과 추억의 중심. 집을 읽으면 그 안에 숨쉬던 나도 살아난다.
질문은 의미를 만드는 첫출발이다. 저자의 재치 있는 시선은 집의 상징을 줄줄이 뽑아 낸다. ‘이 집은 남성인가 여성인가.’ 아내가 좋아하는 아파트, 남편이 편안해하는 집 등은 집의 성격을 대변한다. 그래서 집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보여 준다.
‘이 집은 몇 시인가.’ 가족의 활동에 따라 집이 겪는 시간 리듬은 달라진다. 내 집은 시간의 층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집에서 나는 ‘소리와 냄새’도 찾아보자. 빗소리와 눈 소리가 들리는지, 소나기 쏟아질 때 흙냄새가 피어오르는지. 집과 나눈 대화는 나의 성장 코드를 이해하는 발판이 된다.
‘이 집의 구석은 몇 개일까.’ 어딘가 비밀스럽고, 무언가 더 있을 듯 궁금해야 애착심이 생긴다. 숨을 구석, 퍼질 구석 등 내 몸의 구석은 어디인가. 꿈꿀 구석, 울 구석 등 마음과 관련된 구석은? 넣을 구석, 걸 구석처럼 물건을 위한 구석은? 구석은 내가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이야기의 보물창고’가 된다.
가슴 뜨끔한 질문도 피할 수 없다. ‘정말 집의 주인이세요?’ 혹시 침대와 소파가 각 방의 주인은 아니었을까. 구석을 없앤 ‘동선 짧은 집’은 공장의 생산시스템과 무엇이 다를까. 내 집의 가치는 집값인가, 체험의 두께인가. 집은 시대의 가치관도 한눈에 보여 준다.
하나로 여럿을 꿰뚫는 것이 통합적 사고다. 우리 집이 내는 울림에 귀 기울여 보자. 삶과 사회가 통하는 체험,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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