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노비≠서양 노예 일반 양인과 차별 안해”

  • 입력 2007년 2월 28일 02시 59분


마당쇠나 돌쇠 등으로 불리며 양반집에 묶여 온갖 잡역에 동원되고 나이 어린 도련님에게 굽실거리던 존재. 사극에서 묘사되는 전형적인 노비(奴婢)의 모습이지만 학계에서는 노비의 성격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최근 발간된 학술지 ‘한국사시민강좌’에서 한국사의 노비는 노예로 보기 어렵다는 사료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노비≠노예’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한국사 연구에서 노비제가 던지는 몇 가지 문제’라는 논문을 통해 695년 통일신라 서원경의 촌락문서부터 1867년 조선의 울산부 호적까지 각 시대의 다양한 인구통계자료를 분석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조선 이전까지 노비의 비율이 인구의 5∼6%에 불과했으며 이는 노예를 생산의 주체로 하는 노예제 사회가 성립되기에는 너무 적은 수치라는 것이다.

당시 노비의 삶도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조선 노비의 절반은 납공노비(納貢奴婢)로 주인의 집과 멀리 떨어져 다른 곳에 살며 연간 일정액의 노역만 제공했다. 이들은 자신의 토지를 보유하며 가족노동으로 경작해 경제적으로 주변의 양인 농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또한 주인집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하며 주인집의 가사 및 농경 노동에 동원된 입역노비(立役奴婢)도 1746년 제정된 법령집 속대전(續大典)에 따르면 결혼 복식 및 처벌 법령에서 일반 양인과 차별을 두지 않았다.

‘한국사시민강좌’는 창간 20주년 특집으로 ‘영·정조 시대는 한국사의 르네상스였는가’와 ‘동학농민운동의 기본 성격’ 등 15개의 핫이슈를 조명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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