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3년 영화 ‘킹콩’ 개봉

  • 입력 2007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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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3월 2일 미국 뉴욕에서 개봉한 영화 ‘킹콩’은 충격 그 자체였다. 거대한 고릴라가 뉴욕시를 덮쳐 지하철을 부서뜨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복엽기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이 영화를 할리우드 영화사상 기념비적인 걸작으로 남게 했다.

‘킹콩’은 이후로도 수차례 리메이크됐다. 2005년에는 ‘반지의 제왕’의 감독인 피터 잭슨이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킹콩’을 최첨단 촬영기법을 사용해 다시 제작하기도 했다.

“‘콩’에 대해 들어봤소? 짐승도 인간도 아닌 좀 더 무서운 괴물이 아직도 살아서 섬을 위협하고 있다고 전해진다오. 미신은 진실을 반영하는 법. 그 섬에는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 살고 있는 게 틀림없소.” “설마 그걸 찍을 생각이오?”(1933년판 ‘킹콩’의 대사)

해골섬에 살고 있는 ‘콩’은 신장이 18m에 이르는 거대한 고릴라. 기록영화 제작자 칼 덴햄은 킹콩을 사로잡아 뉴욕으로 데리고 온다. 그러나 카메라 플래시에 놀란 킹콩은 창살을 부수고 뛰쳐나와 사랑하는 앤을 데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옥상에 올라선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보호하다가 빌딩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예언자가 말하기를, 야수는 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잔인한 손은 얼어붙었고, 그 날 이후 야수는 얼이 빠진 자처럼 되었다.”(고대 아라비아의 속담)

피터 잭슨 감독은 호러 스릴러 영화였던 ‘킹콩’을 도시에서 길 잃은 야수의 슬픈 러브 스토리로 재구성해 냈다. 괴물 같은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와의 사랑은 그리스 신화 ‘큐피드와 프시케’, ‘미녀와 야수’, ‘개구리 왕자’부터 ‘노트르담의 꼽추’ ‘오페라의 유령’ 등에서 꾸준히 변주되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지막에 멋진 왕자님으로 변신하는 ‘미녀와 야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주인공 ‘유령’은 납치한 크리스틴을 라울에게 보내준 뒤 죽음을 맞고, ‘킹콩’은 자신을 점점 궁지에 모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결국 마천루까지 오른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반(反)영웅인 이들은 처음으로 진실한 사랑을 발견하지만 고독하게 죽음을 맞는다.

‘킹콩’에서 칼 덴햄이 내뱉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야수를 죽인 건 미녀였소(Beauty killed the beast).”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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