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의 한 학부 OT에는 ‘엑스맨’들이 등장했다. 몇몇 선배가 신입생인 척하며 후배들 틈에 끼어 참석한 뒤 “야, 저 선배 좀 이상하지 않으냐?” 등 속마음을 떠보는 것. 순진한 일부 학생들은 이 말에 동조했다가 선배들로부터 집단따돌림(왕따)을 당했다.
중앙대의 모 학과 신입생 OT에서는 ‘엑스맨’들이 “난 우리 학과 별로 지원하고 싶지 않았는데 넌 어떠냐”며 운을 뗀 뒤 후배에게서 “솔직히 나도 그렇다” “재수할까 고민 중이다” 등의 대답이 나오도록 유도했다. ‘엑스맨’ 선배들은 이런 말이 나오면 “사실 나 선배인데, 벌써부터 그런 마음이면 어떡하냐”고 섭섭함을 표시해 신입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 과음 대신 배움터, OT의 달라진 풍경
예전에는 OT에서 선배들이 서먹함을 없애고자 후배들에게 많은 술을 마시게 했다. 주량이 약하거나 종교 때문에 술을 입에 대지 못하는 새내기들은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술을 강요하는 선배가 거의 없다. 신입생들도 재량껏 술을 마신다. 고려대 경영학과 이동현(가명·28) 씨는 “막걸리를 큰 사발에 가득 담아 ‘원샷’을 시키던 고려대 OT의 ‘사발식’도 인권침해라며 반발하는 새내기가 많아 조심스러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OT는 전공의 특성을 살려 신입생의 창의성을 북돋우는 워크숍 형태로 진행된다. 조별로 계란, 젓가락, 고무줄 등의 재료를 나눠 주고 계란을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도록 만들어 보라는 등 과제를 제시해 경기를 벌인다.
○ OT의 추억은 사진 대신 손수제작물(UCC)로
10여 년 전만 해도 OT의 추억은 주로 사진을 인화해서 간직했다. ‘롤링 페이퍼’에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빽빽이 적어 건네기도 했다. OT가 끝나고 돌아온 뒤 사진을 슬라이드용 프레임으로 만들어 영사기를 통해 함께 보며 웃기도 했다.
요즘은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등 첨단기기가 동원된다. 올해 한양대 신입생 OT의 장기자랑 하이라이트는 ‘마빡이’ 대결. 선배들은 캠코더로 찍은 ‘마빡이’ 동영상을 UCC로 만들어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올릴 예정이다.
인터넷 게시판이 ‘롤링 페이퍼’를 대신해 서로 추억을 나누는 매개체가 된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 OT의 지우고픈 실수, 만회하려면?
즐거운 OT 분위기에 취해 동기나 선배들 앞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새내기들도 있다. 자신의 취한 모습이 찍힌 사진파일이나 동영상 UCC가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와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엑스맨’에게 속아 선배를 헐뜯는 사례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적당한 음주와 말조심이 최선의 방지책이지만, 이미 저지른 실수를 되돌릴 수는 없다. 보기 싫은 사진이나 동영상은 망설이지 말고 삭제를 요청한다. 서울대 경제학부 경기동(20) 씨는 “말실수를 했다면 피하지 말고 오히려 선배들에게 사과하며 친해지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