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환의 만화방]허영만-김세영 ‘타짜’

  • 입력 2007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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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는 만화계의 대표 브랜드 허영만이 스토리작가 김세영과 함께 작업한 도박을 소재로 한 만화다. 화투와 트럼프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카드게임을 소재로 한다. 70%의 운과 30%의 기량으로 겨룬다는 ‘운7기3’의 게임이 아니다. 90% 승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사기 도박판에서 10%의 설마를 두고 싸우는 아귀다툼이다.

사기 도박꾼을 뜻하는 타짜는 최악의 인간들이다. 주인공은 타짜에 의해 정교하게 연출된 도박판에서 돈과 함께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를 털린다.

그리고 이를 찾기 위해 남의 목숨까지 가져와 판을 벌인다. 주인공 역시 최악이다. 승부에 대한 흥미야 모든 이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사행심에 돈을 걸고 우연성에 목숨을 거는 주인공은 최악의 심성을 지녔거나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인생이니 최악 대 최악이 대결하는 셈이다. 여기서부터 도박의 방법에 대한 흥미가 아닌 ‘타짜’라는 드라마의 유희성과 매력에 가속도가 붙는다.

1부의 주인공 고니는 동네 섰다판에서 애 딸린 누나의 전 재산을 날려 먹었다. 2부에서는 고니의 조카 함대길이 고스톱 사기에 빠져 교도소에 수감된다. 3부에서는 고니의 스승인 짝귀의 늦둥이 아들 도일출이 포커 사기에 걸려 신체 포기 각서를 쓴다. 4부는 카지노 빚 대신 한쪽 신장을 잃고 국제 미아가 된 장태영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늘 최악의 상황에 몰린다. 각기 다른 주인공, 각기 다른 사건이 펼쳐지지만 8000페이지에 육박하는 장대한 서사는 하나의 결말을 향해 질주한다.

고니는 사기꾼의 손목을 자르기 위해 작두를 들고 고향을 떠난다. 함대길은 복수를 위해 교도소에서 도박 기술을 익혀 신의 손이 된다. 도일출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판을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기술자 원아이드잭이다. 그러나 트럼프에는 눈 하나만 그려진 J 카드가 두 장이다. 장태영은 생의 라이벌인 친구 박태영에게 모든 것을 뺏긴다. ‘망가진 패에 미련을 갖지 않고 남의 패를 모두 보려 하지 않음’으로써 사행성과 유희성으로부터 탈출하고 최종 승자가 된다. 주인공은 사건 해결에 대한 성찰로 한 계단씩 성장하고 서사는 성장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타짜’는 도박 기술을 알려 주는 만화가 아니다. 6·25전쟁 이후의 혼란과 군부 통치하의 경제성장, 신흥 졸부와 벤처 붐 등 우리 현대사의 내면을 빼곡하게 담아낸 생활사이고 인생의 축소판인 도박판을 통해 삶의 기술을 알려 주는 처세서이자 병법서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오욕칠정에 대한 성찰을 성장드라마라는 익숙한 서사 구조를 통해 묘사해냄으로써 이야기의 근원적 힘을 확보했다. 도박 콘텐츠 만화가 아니라 어떤 문화상품으로도 응용 생산될 수 있는 문화콘텐츠 원형이다.

박석환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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