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로가 포장됐지만 벽지라는 인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이런 곳에 미술관이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마저 인다.
“이곳은 대표적인 문화 소외 지역입니다. 문화는 삶의 질을 높이는 조건인데, 벽지라고 문화까지 소외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곽 관장은 1965년 부친 곽귀동 씨가 설립한 영남중학교가 학생이 줄어 2003년 폐교되자 남포미술관으로 바꾸어 개관했다. 주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땅을 팔라고 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곽 관장은 “이곳 오지에서 일찍부터 교육 사업을 펼친 선친의 뜻을 이으려면 문화 사업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남포미술관은 광주와 전남 작가들의 작품 35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1년에 6, 7회 특별전을 열고 있다. 어린이교육프로그램이나 클래식 공연 행사도 마련하고 가족 단위로 머물 수 있는 숙소도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개관 2주년 기념 특별전 ‘판화의 세계로’가 25일까지 열리고 있다. 광주 우제길미술관의 우제길 관장을 비롯해 지역 작가 22명이 참가한 전시인데 판화의 다양한 표현 방식과 제작 기법, 판화의 변천 등을 감상하기에 좋은 전시다.
전시 작품은 목판화부터 디지털 프린트 이미지까지 다채롭다. 바늘 뭉치로 점을 새겨 이미지를 만든 ‘기프트 박스 0307’(김원), 베니어판의 층을 계속 깎아 내면서 여러 색의 추상을 찍은 ‘랜드스케이프 오브 데이드림 4312’(김익모), 100호 크기의 대형 평면 회화를 세 개나 붙여 놓은 듯한 ‘시 오브 사운드 3001’(박구환), 10여 가지 색의 기호로 추상을 표현한 ‘라이트2006 12-A’(우제길), 잉크와 기름을 섞어 기름의 농도나 특성에 따라 질감을 다르게 표현한 ‘토테미즘’(임병중), 장미를 촬영한 뒤 컴퓨터 그래픽으로 동판 효과를 낸 ‘로즈’(홍지애) 등이다.
최근 남포미술관을 찾은 이영란(46·부산 북구 화명3동) 씨는 “동생네 가족과 여행을 갔다가 우연찮게 들렀는데 판화의 다채로운 세계에 놀랐다”며 “벽지에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에도 감명받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 미술관의 매력은 인근 관광지와 연계해 ‘문화관광벨트’를 이룬다는 점이다. 인근 해돋이를 볼 수 있는 남열해수욕장, 해창만의 갈대숲, 용이 승천했다는 용바위 등이 다도해를 배경으로 ‘그림’을 이루고 있고, 팔영산 자연휴양림도 근사하다. 특히 자동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외나로도의 우주센터가 완공되면 미술관에 더욱 많은 사람이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미술관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 사람만 1만여 명에 이른다.
미술관 운영진은 곽 관장 부부 두 명이다. 재정이 열악한 데다 벽지 근무를 원하는 이들이 없어 부부가 전시 기획, 작가 섭외, 디스플레이, 청소까지 각기 1인 다역을 맡고 있다.
곽 관장은 “전시할 때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홈페이지에 남긴 관객의 짧은 감상문이나 격려의 말을 들을 때 보람이 샘솟는다”며 “이곳 벽지에서도 문화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061-832-0003, www.nampoart.co.kr
고흥=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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