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역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고두심(52) 씨가 연극 '친정 엄마'에서 친정엄마 역을 맡아 7년 만에 무대에 선다.
"2000년 모노드라마 '나, 여자예요'를 하고 나서 너무 힘들어 다시는 연극 안하려고 생각했었죠. 게다가 어머니역을 워낙 많이 했잖아요. 그래도 이 작품은 꼭 하고 싶었어요."
'친정 엄마'는 방송작가 고혜정(39) 씨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수필을 원작으로 한 연극. 2004년 출간돼 20만부 넘게 팔려나갔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딸과 그 딸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일자무식의 시골 친정 엄마와의 에피소드를 담은 내용으로 실제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했다. 연극은 극적인 결말을 위해 결말만 바꿨다.
"연극 얘기가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배우가 고 선생님이었죠.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고 선생님이 연기한 엄마가 실제 우리 엄마와 제일 비슷해요. 요즘은 세고 당당한 엄마들이 많지만 우리 엄마는 약하고 못나서 딸한테 미안해하는 그런 분이거든요. 이번에 고 선생님이 엄마역을 맡는다고 하니까 또 미안해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잘난 양반이 이렇게 못난 사람 연기를 해서 미안해서 어쩐다냐. 그런 양반이 진짜 니 엄마였으면 좋았을 텐디'."
이 연극은 '김치'로 시작해 '김치'로 끝난다. 딸 입맛에 맞춰 적당히 익힌 김치는 사랑을 상징한다. 고두심 씨에게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많이 나는 고사리가 그렇다.
"우리 어머니 손은 만능이어서 들에 나갔다 오시면 풀들이 다 맛있는 반찬이 됐었죠. 서울로 늘 고사리를 보내주시곤 했는데 항상 제일 먼저 딴 고사리를 보내셨어요. 생선 담았던 비닐을 물에 깨끗이 헹궈서 거기 담아 보내셨는데, 꼭꼭 묶은 매듭을 풀 때마다 이걸 싸서 보낼 때 마음이 어떠셨을까 싶더라고요. 그것도 모르고 가끔 남편은 서울서도 다 살 수 있는데 괜히 보내신다고 하죠. 돈이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신 건데…."
고사리 얘기를 할 때 살짝 코끝이 빨개진 고두심 씨는 친정엄마를 6년 전에 여의었다. 그는 "우리 엄마도 이 연극 속 엄마처럼 글도 모르고 농사만 지으셨죠. 나이 드셔서 유일한 낙이 화투놀이셨는데 그거 할 때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시는 거예요. 근데 저는 화투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렇게 앉아있기도 힘들고 같이 못 놀아드렸는데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 그렇게 후회되고 그렇더라고요."
연습실에서 고두심 씨의 연기를 본 고혜정 씨는 "시집가기 전 사돈될 집으로부터 보잘 것 없는 친정엄마가 무시당하는 부분에서는 펑펑 울었다"며 "실제 그 일을 내가 겪었을 때는 나도 정신없어 몰랐는데 오히려 고두심 씨의 가슴을 뜯는 연기를 보면서 오히려 우리 엄마가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사실 큰 애(아들)를 낳고는 별로 몰랐는데 둘째인 딸을 낳고부터 엄마에 대한 애틋함이 더 생기기 시작했어요. 확실히 엄마와 딸의 관계는 다른 것 같아요." (고혜정)
고두심 씨는 곧 진짜 '친정 엄마'가 된다.
"9월에 딸을 시집보내요. 내가 정말 친정엄마가 된다는 게 무섭기도 해요. 연극 대사에서 친정 엄마가 딸에게 말하죠. 딱 너 같은 딸 낳아서 한번 키워보라고. 저도 우리 딸한테 대놓고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그런 생각 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극중에서도 친정엄마가 딸에게 말하잖아요. '나는 너 아니면 태어날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그게 진짜 엄마 마음이죠."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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