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나서 미안해하는 엄마와 가여워 화내는 딸 이야기”

  • 입력 2007년 3월 6일 02시 59분


4월 12일∼5월 6일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친정엄마’로 7년 만에 무대 나들이를 하는 고두심 씨(오른쪽)와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쓴 원작자 고혜정 씨. 신원건 기자
4월 12일∼5월 6일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친정엄마’로 7년 만에 무대 나들이를 하는 고두심 씨(오른쪽)와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쓴 원작자 고혜정 씨. 신원건 기자
■ 연극 ‘친정엄마’ 배우 고두심-작가 고혜정 씨

《결혼해 애 낳고 사는 여자 치고 ‘친정엄마’라는 말에 가슴이 저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머니 역에 있어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고두심(52) 씨가 연극 ‘친정 엄마’에서 친정 엄마 역을 맡아 7년 만에 무대에 선다. “2000년 모노드라마 ‘나, 여자예요’를 하고 나서 너무 힘들어 다시는 연극 안하려고 생각했었죠. 게다가 어머니 역을 워낙 많이 했잖아요. 그래도 이 작품은 꼭 하고 싶었어요.”》

‘친정 엄마’는 방송작가 고혜정(39) 씨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수필을 원작으로 한 연극. 2004년 출간돼 20만 부 넘게 팔려 나갔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딸과 그 딸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일자무식의 시골 친정 엄마와의 에피소드를 담은 내용으로 실제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했다. 연극은 극적인 결말을 위해 뒷부분만 바꿨다.

작가 고 씨가 들려준 얘기다. “연극 얘기가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배우가 고 선생님이었죠.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고 선생님이 연기한 엄마가 실제 우리 엄마와 제일 비슷해요. 요즘은 세고 당당한 엄마가 많지만 우리 엄마는 약하고 못나서 딸한테 미안해하는 그런 분이거든요. 이번에 고 선생님이 엄마 역을 맡는다고 하니까 또 미안해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잘난 양반이 이렇게 못난 사람 연기를 해서 미안해 어쩐다냐. 그런 양반이 진짜 니 엄마였으면 좋았을 텐디’.”

이 연극은 ‘김치’로 시작해 ‘김치’로 끝난다. 딸 입맛에 맞춰 적당히 익힌 김치는 사랑을 상징한다. 고두심 씨에게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많이 나는 고사리가 그렇다.

“우리 어머니 손은 만능이어서 들에 나갔다 오시면 풀들이 다 맛있는 반찬이 돼 밥상에 올랐죠. 서울로 늘 고사리를 보내 주시곤 했는데 항상 제일 먼저 딴 고사리를 보내셨어요. 생선 담았던 비닐을 물에 깨끗이 헹궈서 거기 담아 보내셨는데, 꼭꼭 묶은 매듭을 풀 때마다 이걸 싸서 보낼 때 마음이 어떠셨을까 싶더라고요. ”

고사리 얘기를 할 때 살짝 코끝이 빨개진 고두심 씨는 친정 엄마를 6년 전에 여의었다. 그는 “우리 엄마도 이 연극 속의 엄마처럼 글도 모르고 농사만 지으셨죠. 나이 드셔서 유일한 낙이 화투놀이셨는데 그거 할 때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시는 거예요. 근데 저는 화투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렇게 앉아 있기도 힘들고 해서 같이 못 놀아 드렸는데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 그렇게 후회되고 그렇더라고요.”

연습실에서 고두심 씨의 연기를 지켜본 고혜정 씨는 “시집가기 전 사돈 될 집으로부터 내세울 것 없는 친정 엄마가 무시당하는 부분에서 펑펑 울었다”며 “실제 그 일을 내가 겪었을 때는 정신없어 몰랐는데 오히려 고두심 씨의 가슴을 뜯는 연기를 보면서 우리 엄마가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이어 그는 덧붙였다. “사실 큰애(아들)를 낳고는 별로 몰랐는데 둘째인 딸을 낳고부터 엄마에 대한 애틋함이 더 생기기 시작했어요. 확실히 엄마와 딸의 관계는 다른 것 같아요.”

고두심 씨는 곧 진짜 ‘친정 엄마’가 된다.

“9월에 딸을 시집보내요. 연극에서 친정 엄마가 딸에게 말하죠. 딱 너 같은 딸 낳아서 한번 키워 보라고. 저도 우리 딸한테 대놓고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그런 생각 할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극중에서도 친정 엄마가 딸에게 말하잖아요. ‘나는 너 아니면 태어날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그게 진짜 엄마 마음이죠.”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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