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현실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희망을 얻는 건 주로 그들이 나보다 못한 처지일 때다. ‘저 사람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어?’ 하며 속는 셈 치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뭐 그런 뻔한 위안.
지금 상영 중인 ‘행복을 찾아서’도 이런 영화인 줄 알았다. 한때 노숙자로 전락했으나 마침내 투자회사 사장 자리에 올라 ‘월스트리트의 신화’로 불리는 크리스 가드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주인공 크리스(윌 스미스)는 진짜 불쌍하다. 팔아야 하는 의료기기는 안 나가고 집세와 세금은 밀려가는데 아내는 도망쳐 다섯 살짜리 아들을 책임져야 한다. 증권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지만 6개월 무급이라 결국 집에서 쫓겨나 아들과 함께 노숙자 보호소를 전전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이런 사람이 성공한다는 얘기는 꽤 희망적일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 몹시 우울해졌다. ‘나는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큐브를 몇 분 만에 맞추는 명석한 두뇌에 무거운 의료기기를 들고 뛰어다니는 체력은 기본. 아들과 함께 지하철역에서 밤을 새우면서도 그 상황을 놀이로 만드는 ‘긍정 마인드’에 페인트 묻은 잠바 차림으로 면접 보러 가서도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 화장실 가고 수화기 내려놓는 시간을 아껴 전화 한 통 더 돌리는 성실함.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고객으로 만드는 수완까지. 이런 사람이라면, 뭐가 되도 된다. ‘아메리칸 드림’은 그냥 오는 게 아니었다.
말은 쉽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다들 ‘힘내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은, 힘내는 게 제일 힘들다. 포기하기가 더 쉽다. 에너지가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모든 태도를 바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잘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 대신 이 영화에서 좀 더 현실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크리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왜 내가 그렇게 될 순 없을까’ 하며 힘을 냈다. 그럴까? 행복하게만 보이는 그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면 그들은 ‘난 정말 행복해’라고 답할까? 다들 하루하루 지지고 볶으며 사느라 힘들다고 아우성일 거다.
정답은 영화 제목과 대사에 담겨 있다. “토머스 제퍼슨이 독립선언문에서 ‘행복권’이 아닌 ‘행복추구권’이라 한 것은 행복이란 어쩌면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완벽하게 행복하지는 않다. 우린 모두 행복을 ‘찾는’ 존재들이니까.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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