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어디냐? 또 파출소는 아니겠지?”
“에이, 신부님도. 이젠 저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잖아요. 저 이래 봬도 사장이에요.”
“사장은 무슨 사장?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돌아다니고 있구나.”
“신부님은 속고만 사셨나? 저 이제 정말 조금 자리 잡았다니까요. 혼인미사 주례 부탁드리려고 하는데, 언제 한번 찾아뵐게요. ”
‘이제 좀 살 만하다’는 아이의 소식이 꽃 소식보다 더 반가웠다.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하느님 앞에 서원한 지도 벌써 스무 해를 훌쩍 넘어섰다. 발끝을 내려다보니 서원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지난 삶이 어른거려 하느님 앞에 송구스럽기만 하다.
세월이 좀 더 흐르고 나면 꼭 해 보고 싶은 일 한 가지가 있다. 만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한적한 바닷가에 아담한 집을 한 채 짓는 거다. 세상살이에 지친 아이들, 2% 부족한 아이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어 허전해하는 아이들이 잠시나마 쉬었다 갈 수 있는 집을 말이다.
홀로 힘겹게 여행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우리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우리 교회는 벽난로 같은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세파에 지친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몸을 녹이고 갈 수 있는 따뜻한 벽난로 같은 교회, 좌절은 희망의 또 다른 얼굴이며 때론 절망도 새로운 힘이 될 수 있음을 알려 주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양승국 신부·살레시오회 수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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