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악상이 마구 떠오르는걸요. 가난했지만 ‘예술’이라는 하나의 지향점을 위해 달린 이 화백은 제 인생의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 게슴츠레 뜬 눈, 말투까지 털털한 작곡가 김현성(45) 씨는 미술관 속 ‘외딴섬’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그가 건넨 것은 한 장의 앨범, 바로 이 화백을 추모하는 앨범인 ‘그 사내, 이중섭’이었다. 화가 추모 앨범은 국내 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일.
“2003년 제주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 미술관’에 갔을 때죠. 미술관장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뜰에서 웬 트로트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해외에는 빈센트 반 고흐를 위한 ‘빈센트’라는 노래가 있잖아요. 우리에겐 유명 화가를 위한 음악이 하나도 없다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죠.”
2년간 이 화백에 대한 평전 6권을 읽고 작품 수백 점을 ‘밥 먹듯’ 쳐다봤다는 그는 이 화백이 남긴 시 ‘소의 말’에 곡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자료를 모으면서 어릴 적 동네 이발소에 걸려 있던 그림이 이 화백의 ‘달과 까마귀’라는 것도 알았다.
이 앨범은 2006년 이 화백 사후 50주기 ‘그 사내, 이중섭’이라는 노래극과 함께 공개될 예정이었다. 제작비 부족으로 노래극은 무기한 연기됐지만 그는 ‘달과 까마귀’, ‘길 떠나는 가족’ 등의 그림과 편지글 등에서 영감을 얻은 13곡을 묶어 7일 발표했다.
“일방적인 존경을 표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조명해 보고 싶었어요. 여태껏 사람들은 그림의 의미보다 ‘몇 억 원짜리인지’를 더 중요시했고 서민들은 ‘억’ 소리에 멀리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가수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의 작사, 작곡가로 유명한 그는 판화가 이철수 선생을 기리는 국악 앨범, 시 앨범 등 음악과 다른 예술 분야의 접목을 시도해 왔다.
어릴 적 미대 진학을 꿈꿨던 그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풍경”이라며 “아홉 살, 일곱 살짜리 내 아이들이 이 화백의 그림을 보며 좋아하듯 음악도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친근함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달 2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국불교문화관에서 ‘그 사내, 이중섭’ 콘서트를 연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한 가지. 그는 이 화백의 인생을 담은 이 앨범이 음악계와 미술계에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길 바라고 있다. 인기, 앨범 판매량 얘기를 하자 “아휴∼ 그런 건 나랑 친하지 않아요”라며 고개를 젓는다. “그저 이 앨범이 내 사후 50주기 때 반추될 수 있다면…”이라며 끝을 흐린다. 마치 ‘그 사내’처럼….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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