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집-맛의 비밀]속리산 ‘비로산장’

  • 입력 2007년 3월 10일 03시 01분


신선한 산채 넣어 부쳐 낸 도토리전… 약이 되는 별미

속세를 떠난다는 이름을 지닌 속리산(俗離山).

법주사에서 걸어서 30∼40분 거리에 비로산장(043-543-4782)이 있다. 등산객들이 약초로 만든 음식과 술로 산행의 피로를 푸는 속리산의 명소다.

김태환(85) 이상금(82) 씨 부부는 1965년부터 이 산장을 변함없이 지켜 왔다. 이곳을 거쳐 가는 손님만 아버지에서 아들로, 다시 그의 아이들로 바뀌었을 뿐. 도토리전(사진)과 산채, 그리고 불로주로 불리는 약초 술은 비로산장의 별미다.

○주인장(이상금 씨)의 말

너무 오래 살았어. 일은 무슨, 요즘 하는 일도 없어. 서울 아가씨처럼 예쁜 사람을 찍어야지. 늙은이 사진은 찍지 마.

우리 집 양반이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산에 다니며 사진 찍는 걸 좋아했어. 틈만 나면 산에 다니더니 아예 내려오지 않더군. 그때 내 나이가 서른아홉이었지. 남편을 설득해 같이 내려가려고 했는데 40년 넘게 살게 될 줄이야.

도토리전은 아무래도 다른 집과 다르지. 요즘 중국산이 아닌 도토리 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거야. 10월 무렵부터 도토리를 모으기 시작해. 줍기도 하고 친한 손님들이 조금씩 가져다준 도토리를 가루로 만들어 놓지.

도토리 가루와 밀가루를 5 대 1의 비율로 섞어. 파와 냉이처럼 푸른색이 많은 재료를 함께 넣지. 도라지나 표고버섯처럼 철마다 산에서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재료도 같이 쓰고 있어.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객=역시 산 아래서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밤길에 다리품을 판 보람이 있습니다.

▽주인장=허기가 지고 먹을 게 없으니 맛있는 거지. 산 음식이 뭐 먹을 게 있나.

▽식=처음에는 움막에서 생활하다 1974년부터 산장을 하셨다는데 어떻게 그 많은 등산객들 입맛을 맞췄나요.

▽주=내가 맞출 수가 있나. 그 양반들이 입맛을 산에 맞춰야지. 산당귀 신선초 산취…. 이런 걸로 약초전도 만들어. 산 동백나무는 봄에 산수유처럼 노란 꽃이 피는데 잎에서 나는 향이 좋아. 이 잎을 말린 뒤 나중에 튀김으로 만들지. 산에서 나는 것이 모두 약초며 약주가 되는 거야.

▽식=산으로 들어간 할아버지한테 불만은 없나요.

▽주=불만은 무슨. 우리 양반은 사진, 글씨, 조각 못하는 게 없어. 예술가야.

▽식=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남긴 방명록 자체가 산장과 속리산, 사람들 삶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 기록처럼 여겨집니다. 유명 인사의 글도 많네요.

▽주=30년 이상 쌓인 사연이니까. 이곳에서 공부해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인사한다며 가끔 찾아와. 그때마다 세월을 잊고 살다 갑자기 이렇게 시간이 지났나 생각하지.

도토리전 3장에 1만 원.

속리산=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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