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산? 낯익은 이름인데, 어디서 봤더라. 시내 중심가에 있던 어떤 근사한 중국음식점 같은데, 아닌가?
중식당 간판으로 낯익은 그 이름. 그런데 그게 18개 고봉을 거느린 대만의 거대산맥이라는 사실을 기자도 이번 여행 중에 알게 됐다.
해발 4000m가 조금 못 되는 위산(玉山·대만 최고봉)산맥은 아는 이가 많다. 그런데 옆에 있는 아리산맥(최고봉은 다다 산·2663m)은 잘 모르는 게 현실. 아리산맥은 위산산맥과 나란히 대만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산맥(평균고도 2500m·길이 250km)이다. 5개 산맥으로 형성된 대만 산악에는 높이 3000m 이상의 고산이 무려 240개나 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대만 유니항공의 여객기가 가오슝 국제공항에 착륙한 것은 2시간 30분 뒤. 남부의 가오슝은 국제무역항으로 그 규모가 굉장하다. 컨테이너 처리량으로 세계 5, 6위권이다. 수도 타이베이에 이은 제2의 도시로 한국의 부산쯤으로 보면 된다.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3일 이곳 기온은 23도였다. 이곳은 아열대도 아닌 열대기후. 그 말에 놀랐다. 열대의 가오슝.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팜트리(야자수)가 그것을 증명했다. 아리 산을 향해 북쪽으로 달리던 중 도로변에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비키니 차림의 아가씨가 유리부스에서 나와 멈춰선 차량의 운전사와 객담을 나누며 무언가 거래를 하는 듯 보였다. 간판에는 ‘檳(낭,랑)(빈랑·현지발음은 ‘삥랑’)’이라고 쓰여 있었다.
열대의 대만 남부는 과일 천국이다. 한국에서 5만∼6만 원을 호가하는 두리안이 8000원밖에 안 한다. 도중에 차를 세우고 들른 길가의 과일가게. 기자도 처음 보는 과일이 많았다. 바나나는 너무 흔해 아예 팔지도 않고 대추는 어른 주먹만 해서 사과로 착각할 정도. 망고, 파파야가 흔하디 흔한 과일이란다. 피부미용을 위해 과일을 즐기는 여성이라면 대만은 ‘머스트 고(must go)’ 여행지다. 여행 내내 과일을 껴안고 지낼 수 있으니까.
드디어 아리 산에 올랐다. 가오슝 공항에서 버스로 무려 4시간 30분이 걸렸다. 캄캄한 밤중. 밤하늘을 보는 순간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도 아랑곳 않고 초롱초롱 반짝이는 별빛의 천상풍경 때문이었다.
한기가 느껴져 온도계를 보니 기온은 12도. 기자가 선 자오핑은 해발 2200m의 고산지대로 온대기후대였다. 여기서 밤을 보낸 뒤 이튿날 새벽에 삼림열차로 주산 산에 올라 위산산맥의 고봉 위로 돋는 아침 해를 맞을 계획이었다. 호텔의 객실에 들자 종업원이 난방기부터 틀라고 당부한다. 웬 난방기? 열대와 아열대의 대만 호텔에는 난방장치가 없는데. 알고 보니 고산지역은 한겨울 눈도 내리는 온대기후대여서 난방장치가 있단다.
오전 6시. 자오핑 역에서 아리 산 삼림열차에 몸을 실었다. 앙증맞을 정도로 아담한 사이즈의 이 열차. 협궤인 데다 지붕도 낮아 마치 놀이공원의 코끼리열차를 연상시킨다. 종착지인 주산 역(해발 2500m)까지는 20분 거리. 아래 역에서 승차한 여행객들로 차 안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붐볐다. 이윽고 주산 역. 산정의 해돋이 전망대인 관일루까지는 15분쯤 걸어 오른다.
고산의 해맞이는 색다르다. 이미 지평선 위로 떠오른 해로 인해 주변이 밝혀진 가운데 단지 고봉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보기 때문. 그나마도 십중팔구는 보기 힘들다는데 그날은 용케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광경은 기대만 못했다. 오히려 관일루 아래로 펼쳐진 깊고 넓은 거대한 계곡의 운해가 더 기다려진다. 운해는 가을이 제철이란다.
삼림열차로 오르는 4시간의 아리 산 여행길. 이것은 아주 특별한 산악철도 여행이다. 평지(해발 30m)의 자이(자이 현 중심지)와 아리산맥의 고산역(2500m)인 주산을 잇는 80여 km의 협궤철로가 산자락을 타고 오르내리며 다양한 기후대(열대 아열대 온대 한대)의 숲을 통과하면서 다양한 식물상을 보여 주기 때문. 한겨울에는 눈 내리는 풍경도 선사한다. 그동안 열차는 터널 50개와 교량 77개를 통과한다. 어떤 곳은 나선처럼 산을 감아 돌고, 그렇게도 할 수 없는 가파른 급경사는 지그재그로 오른다.
자오핑 편백 숲에는 그런 노거수를 상징하는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아리 산 향림신목’이다. 팻말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수령 2300년, 수고 43m, 둘레 12.3m.’ ‘신목(神木)’이란 이 숲의 좌장 격인 편백나무에 붙여 주는 이름. 1대 신목이 번개에 쓰러지자 임명됐다.
이런 신목급 편백 노거수가 자오핑 숲에는 아직도 20그루 남아 있다. 그 거목들은 나무보도가 가설된 숲 산책로를 따라가며 감상할 수 있다. 짙은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숲 속은 기온(섭씨 15도)도 알맞고 나무 향까지 상큼해 삼림욕장으로 그만이었다. 일제는 삼림철도까지 놓고 이 나무를 베어 갔다. 그러니 도대체 그 수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숲에는 희한한 형태의 편백나무도 많다. 하트 모양의 사랑나무, 세 그루와 네 그루의 뿌리가 얽히고설킨 채 두루 함께 생장하는 세 자매-네 형제 나무 등등. 그중 최고는 3대목(三代木)이다. 죽은 1대를 발판삼아 2대목이 자랐고, 2대목이 죽자 그 위에 뿌리내린 3대목이 한창 자라고 있다. 미물인 나무도 이러할진대 불과 60여 년 전 자행된 일제의 만행이 과연 부인한다고 사라질 것으로 믿는지. 반성 없는 일본인에게 꼭 한번 보여 주고 싶은 나무다.
아리 산=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열대 아열대 온대 한대 다양한 기후 체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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