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茶禮’… ‘나’를 만나는 일상의 쉼표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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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음료가 아니다. 문화다. 손님을 대접하는 귀한 마음과 어른을 존경하는 예가 있다. 전통다례 보급에 앞장서는 명원 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 이 차를 음미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차는 음료가 아니다. 문화다. 손님을 대접하는 귀한 마음과 어른을 존경하는 예가 있다. 전통다례 보급에 앞장서는 명원 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 이 차를 음미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비가 오다 갰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명원다례(茗園茶禮) 전수관은 은은한 차 향기로 가득 찼다. 다도(茶道) 종가의 맥을 잇고 있는 명원문화재단 김의정(66) 이사장이 개량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맞았다.

“차(茶)는 나이도 국경도 없어요. 문화이고 예(禮)이며 정치이기도 하지요.”

김 이사장은 고운 연두 빛깔 녹차를 권했다. 그는 “일본 사람들은 다도를 어려서부터 생활 속에서 배운다”면서 “한국도 차 문화의 역사가 오래됐는데 ‘다도’ 하면 일본을 떠올려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근 차가 우리네 일상생활과 가까워지기는 했다. 사무실 ‘간식코너’에는 어김없이 커피믹스와 함께 녹차 티백이 놓여 있다. 식품업체들은 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앞 다퉈 다양한 차 음료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다인(茶人)들은 차를 단순한 음료로 보지 않는다. 이들에게 차는 문화다. 손님에게 정성을 다해 대접하는 마음이 있고, 어른에게 좋은 차를 올리는 예가 있다. 영국인들은 전쟁 중에도 차 마실 시간에는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지 않는가.

국내에서도 한국의 전통 차 문화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 젊은 층 파고드는 차 문화

“잦은 야근에 매번 새로운 웹 디자인 개발…. 소진된 에너지를 채워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어요.”

웹 디자인업체 ‘인터랙티브디자인 ID369’ 조영주 대표는 이달 초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 한복판에 ‘다초암(茶草庵)’이라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직원, 손님과 함께 차를 나누는 곳이다. 영화세트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실제 산사(山寺)를 찾은 듯한 분위기로 꾸몄다.

조 대표는 “직원들이 차 한 잔으로 원기를 되찾은 느낌이라고 좋아한다”면서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외부 사람들에게 공개해 도심 속의 참선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는 나눔이다. 그래서인지 생활 속에서 차 문화를 나누려는 젊은 층도 증가하는 추세다.

인터넷커뮤니티사이트인 싸이월드 동호회 ‘차를 즐기는 사람들’ 정기모임에는 ‘커피에 지쳤다’는 고등학생들도 찾아온다. 1000여 명의 회원 중 20, 30대가 가장 많다.

운영자 김민희(27·여) 씨는 “매달 한 번씩 모여 새로운 차를 음미하고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게 재미”라며 “날이 좋으면 보온병과 다기를 챙겨 가까운 공원에서 ‘번개’를 하고, 때로는 차밭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소개했다.

아기자기한 다기에 매력을 느껴 수집가로 나선 사람도 많다고 한다.

○ 한국의 전통 다례를 살리자

“TV 사극을 보면 술 마시는 장면은 많은데 왜 차를 나누는 모습은 없는지…. 고려시대엔 장군이 부하에게 차를 건네는 군례(軍禮)도 있었는데 지금 우리는 ‘술과 고기를 내려라’밖에 모르잖아요.”

차를 즐기는 사람이 늘었지만 ‘다도의 본고장은 일본’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힌 이가 여전히 많다. 그래서 김 이사장은 전통 차 문화의 ‘전도사’ 역할에 충실하려 애쓴다. 그는 TV 사극 제작진에 차를 마시는 장면을 포함시키라는 ‘압력’을 넣기도 했다. 대중매체를 통해 소개되면 전통 차 예절이 생활 속에서 자리 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KBS 드라마 ‘명성황후’의 다례 장면 고증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차는 그 자체보다 손님을 맞는 법, 절하는 법, 차를 나누는 법 등 다양한 예절이 포함된 문화다. 전통차를 즐기는 이들이 다도보다 다례(茶禮)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김 이사장은 “명절에 지내는 차례가 원래 차를 올리는 예일 정도로 한국은 차 문화의 수준이 높았다”면서 “일제의 우민화 정책으로 차는 가고 술만 남은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의 차 사랑 역사는 어머니 고(故) 명원 김미희로 거슬러 올라간다. 쌍용그룹 창업자 성곡 김성곤 회장의 부인인 고인은 1970년대부터 사재를 들여 차 문화의 흔적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가 다례를 발전시켰던 공간인 일지암을 복원했다. 또 조선의 마지막 상궁 김명길에게서 궁중다례를 전수받아 현대 다례의 기초를 닦았다.

“어머니는 일본의 다회에 참석했다가 ‘한국에도 차 문화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통을 되살려 일본식을 배제하고 우리만의 다례를 되살리겠다고 결심하셨죠.”

김 이사장의 치과의사 며느리도 다도 종가의 대를 잇기 위해 전수를 받고 있다. 여섯 살짜리 손녀도 벌써 차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 가족과 함께 봄날의 차밭 추억 만드세요

차를 마시는 사람은 안다. 차의 향과 맛, 차를 마신 후 나타나는 몸의 변화, 나눔의 기쁨….

‘차를 즐기는 사람들’의 운영자 김민희 씨는 “차를 꾸준히 마시면 자극적인 음식에 지친 입맛이 돌아온다”면서 “수십, 수백 가지의 차에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차 예찬론을 펼쳤다.

명원다례 김 이사장은 어린이 예절교육에 좋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례는 차를 어른들과 함께하며 배우는 예절”이라며 “차를 소중히 다루는 것에서 자신과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겸손함을 배운다”고 말했다.

다인들이 추천하는 차는 어떤 것일까. 김 이사장은 경남 하동의 야생 차밭에서 나는 ‘야생차’를 권했다. 같은 차나무라도 풍토와 재배방법에 따라 그 향과 맛이 다른데 하동 야생차는 그 풍미가 일품이라는 것.

“봄을 맞아 가족이 함께 차밭으로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제 곧 새 잎을 떼어내는 시기입니다. 아이들과 직접 딴 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명원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이 전하는 ‘생활다례’

“궁중다례를 일반인이 배우긴 어려워요. 우리 생활 속에서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생활다례를 익히는 게 좋습니다.”

명원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이 간단한 생활다례에 대해 소개했다.

▽차실 방문=차실(茶室)의 주인이 손님을 맞이할 때 지켜야 할 예절이다.

주인은 손님을 현관에서 맞아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아랫사람을 보내기도 한다. 먼저 앞장서라고 서로 권하다가 손님을 앞세우고 차실로 향한다.

신발을 벗고 차실(혹은 거실)에 들어선다. 이때 일본에서는 신발의 앞코가 바깥쪽을 향하도록 놓는다. 나갈 때 편히 신으라는 의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신발의 앞코가 안쪽을 향하도록 정돈한다. 손님에게 ‘어서 나가라’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를 피하기 위한 배려다. 차실에서는 왼발로 먼저 내딛어 자리를 잡고 서로 절한 다음 주인이 “차를 올리겠다”며 다기가 놓인 상 앞에 앉는다.

▽잎차 만들기=우선 간단한 다기와 용품을 준비한다.

찻잔, 다관(주전자), 숙우(물을 식히기 위한 그릇), 다호(찻잎을 넣어둔 항아리), 탕관(물을 끓이는 용기), 퇴수기 등이 필요하다. 탕관은 집에 있는 전기포트를 사용해도 된다.

먼저 찻잔을 데운다. 끓인 물을 숙우에 따른 후 다관에 옮긴다. 그 다음 다관의 물을 찻잔에 부으면 된다. 이때 주인의 잔을 가장 나중에 따른다.

다관과 찻잔을 데운 후에는 본격적으로 차를 우리는 단계로 넘어간다. 탕관의 물을 숙우에 따른다. 차에 알맞은 물 온도는 섭씨 60∼80도. 물을 식히는 동안 다호에서 적당량의 찻잎을 덜어 다관에 넣는다. 숙우의 물이 알맞게 식으면 이를 다관에 붓는다. 그런 다음 찻잔을 데우기 위해 부었던 물을 퇴수기에 버린다. 주인 잔의 물은 가장 나중에 버려야 한다.

다관에서 차가 적당히 우러나면 첫물을 버린 후 여러 번에 걸쳐 차를 따르면 된다. 찻잔이 세 개가 있다면 주인에게 가까운 순으로 ‘주인 잔 1 2 3, 3 2 1 주인 잔’ 등으로 나눠 따른다. 주인 앞의 잔부터 따른 뒤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일본은 찻잔을 가로로 나란히 놓지만 한국은 세로로 놓는다.

▽차 음미하기=오른손으로 찻잔을 잡고 왼손은 찻잔을 받친다.

차를 들자마자 ‘원샷’은 금물. 먼저 차의 색을 감상한 뒤 올해 차 농사에 대해 덕담이라도 나누는 게 좋다. 가슴 높이 정도로 올려 차의 향을 맡고 한 모금 맛을 본다. 차 맛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 후 조금씩 음미하면서 마신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녹차-엽차-우전차의 차이를 아시나요

‘녹차 홍차 우롱차 보이차 우전차 허브차 설록차…’.

차(茶)를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시중에 나와 있는 차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각각의 차에 어떤 특성이 있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차는 어떻게 구분되는 것일까.

사전적 의미의 차는 차나무의 순이나 잎을 재료로 해 만든 것을 말한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허브차는 차가 아니다. 다른 식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차나무의 학명은 ‘카멜리아 시넨시스’로 동백과에 속한다. 대개 온대와 열대지방에서 자란다. 한국에서는 주로 남부지방에서 재배된다.

명원문화재단 김의정 이사장은 “차는 발효 정도, 잎을 따는 시기, 형태, 제조 방법 등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발효 정도=얼마나 발효됐느냐에 따라 비발효차, 반발효차, 발효차로 나뉜다.

녹차는 전혀 발효시키지 않은 비발효차다. 찻잎의 엽록소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증기로 찌거나(증제차) 가마솥에 볶은 후 익혀서(덖음차) 마실 수 있다. 적당히 발효시킨 반발효차는 중국의 푸젠성과 광둥성, 대만에서 주로 생산되며 우롱차가 대표적이다.

영국인들의 ‘국민 음료’로 불리는 홍차는 발효차다. 녹차가 중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발효되는 바람에 홍차가 영국에 전해졌다는 설도 있다. 다이어트 차로 유명한 보이차도 발효차의 일종.

비발효차와 반발효차의 중간 정도로 발효시킨 약발효차로는 황차가 있다.

▽수확 시기=차는 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서도 구분된다.

우전차는 곡우(양력 4월 20일경) 전에 뾰족한 싹과 아직 피지 않은 어린 잎을 따서 만든 차다. 세작은 곡우와 입하(5월 5일경) 사이에 잎이 다 펴지지 않은 찻잎을 따서 만든다. 중작은 6월 하순에서 7월 사이에 잎이 좀더 자라 다 펴진 잎을 한두 장 함께 따서 만든 차. 마지막으로 대작은 8월 하순(처서·8월 23일경)부터 9월 초(백로·9월 8일경)까지 중작보다 더 굳은 잎을 따서 만든다.

▽형태=차는 모양에 따라 엽차 말차 단차 등으로도 나눌 수 있다.

엽차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차다. 찻잎을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가마에 덖거나 증기에 익혀 말린다.

말차는 가루로 된 차다. 차광막을 치고 특수 재배한 찻잎을 가루로 만든 뒤 체에 걸러 매우 미세한 가루만 받아낸 것이다. 일본의 다도(茶道)에 쓰이는 차는 대개 말차다.

떡차로도 불리는 단차는 찻잎을 시루에 쪄 절구에 넣고 찧은 다음 이것을 떡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고체화한 것을 말한다. 보관하기 좋으며 조금씩 떼어서 쓰면 된다.

▽퀴즈 하나=기사의 맨 앞에서 나열한 차들의 ‘정체’는?

녹차는 비발효차, 홍차는 발효차, 우롱차는 반발효차다. 보이차는 발효차의 일종이다. 우전차는 어린 잎으로 만든 고급 차. 설록차는 아모레퍼시픽의 녹차 브랜드 이름이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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