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파리의 심판’에서 보르도 와인이 신출내기 캘리포니아 와인에 세계 최고의 자리를 내준 뒤 30년 만에 펼쳐진 리턴 매치였다.
승부는 또다시 예상을 깼다. 심사위원들이 라벨을 가린 채 1971년산 10가지 와인의 맛을 감정한 결과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KO승. 캘리포니아의 리치 몬테벨로 레드와인이 압도적인 점수 차로 1위에 올랐다. 그 뒤를 이어 5위까지 줄줄이 캘리포니아 와인이 휩쓸었다. 장기 숙성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라는 공식이 깨진 것이다. 와인의 종주국으로 자부했던 프랑스의 자존심은 다시 무너졌다.
‘최고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자연환경. 태평양 연안의 캘리포니아는 여름에는 서늘하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따뜻해 와인용 포도 재배에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췄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칠레 호주 남아공 등도 비슷한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비결은 캘리포니아 와이너리 오너들의 남다른 노력과 열정이다.
미국 와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버트 몬다비는 1962년부터 세계 유명 와인 생산지를 방문해 비법을 일일이 배웠다. 1980년에는 보르도 대표 와인 중 하나인 샤토 무통 로칠드의 바롱 필리프 로칠드와 함께 ‘오퍼스 원’이라는 캘리포니아 와인 최대 걸작품을 만들어냈다.
미국의 대표 와인 회사인 갤로는 세계 최대 와인그룹이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많이 팔리는 와인의 대부분이 갤로 와인이다.
리치 몬테벨로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진가를 세상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샌타크루즈 산맥의 정수리에 자리한 리치 몬테벨로는 미국 오크통을 고집하면서 ‘아메리칸 스타일’ 와인을 선보였다. 특히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을 섞어 18개월 이상 숙성시킨 ‘몬테벨로 2000 빈티지’는 상당량이 입도선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일 한국을 방문한 리치 몬테벨로의 폴 드래퍼 회장이 말한 비결은 간단하다. “세계 최고의 포도를 재배해 최고의 양조기술로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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