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집-맛의 비밀]서울 광장시장 ‘오라이 등심’

  • 입력 2007년 3월 24일 03시 00분


‘All right’보다 ‘오라이’라는 말이 더 익숙했던 시절이 있다. ‘괜찮다’ ‘좋다’는 뜻임을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때는 그냥 ‘출발!’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서울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에 있는 ‘오라이 등심’(02-2279-8449)은 30여 년간 친숙한 상호와 ‘동그랑땡’으로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동그랑땡은 정확하게는 ‘돼지목살 고추장 양념구이’다. 불판에 올려놓은 고기 모양이 동그랑땡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주인장(오애숙 씨·62)의 말

사람마다 천직이 있지. 처녀 시절 식당 일을 도왔는데 체질에 맞았어. 결혼 뒤 식당을 시작했는데 이제 34년이 넘었네. 한국 사람치고 돼지고기와 고추장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 당시 목살을 고추장 양념으로 요리하는 집은 드물었어. 그래서 삼겹살보다는 흔하지 않은 목살을 선택했지. 처음에는 목살을 그냥 썰어서 구웠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았어. 퍽퍽해서 먹기 힘들다는 말이 나왔지.

우리 집이 유명해진 것은 동그랑땡 같은 모양과 고기의 냉동, 숙성 덕택이야.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산 국산 목살을 동그랗게 말아 비닐에 싼 뒤 냉동실에서 이틀간 숙성시키지. 이 과정을 거치면 고기가 굵은 소시지처럼 둥글게 돼. 오전에 고기를 8mm 두께로 썰어 냉동실에서 보관하다 주문을 받으면 양념을 한 뒤 내놓아. 그래야 고기가 적당하게 연하면서도 씹는 맛이 살아나거든.

고기만큼 중요한 것이 양념이야. 고기보다 양념값이 더 들어가지. 고추장과 고운 고춧가루를 비슷한 양으로 섞은 뒤 생강 마늘 물엿 후추 양파 대파를 넣어. 건더기가 없이 잘 저어질 정도야.

○ 주인장과 식객의 대화

▽식객=맛이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하네요.

▽주인장=옛날보다는 약간 달아. 사람들 입맛이 바뀌니까. 아이들이 있는 가족 손님이 많기 때문에 지나치게 맵지 않게 하지. 고추도 청양고추가 아닌 덜 매운 고추를 써.

▽식=200g인데 양이 많아 보입니다.

▽주=동그랗게 마는 게 기술이야. 제대로 말아 숙성시켜야 나중에 고기가 부서지지 않고 제 모양을 유지하면서 푸짐해 보이거든.

▽식=살이 많은 목살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주=같은 목살이라도 가급적 머리 쪽에 가까운 부위를 사야 해. 그래야 적당하게 지방이 섞여 고기 맛이 훨씬 좋거든. 다른 쪽은 살코기가 너무 많아 맛이 떨어져.

▽식=손님의 발길이 끊인 적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주=나의 ‘오라이’는 ‘손님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오시라’는 뜻이야. 어렸을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오던 손님이 장가 간 뒤 아이들과 함께 와. 그럴 때 장사를 헛하지 않았다는 보람을 느끼지.

▽식=두 아드님도 가업을 잇는다는데.

▽주=아이들이 어릴 적 방학 때면 숯불을 피웠어. 모두 대학까지 나왔는데 아쉬운 생각도 있지. 하지만 하겠다는 데 말릴 수 있나? 가족끼리 어울려 사는 것도 좋잖아.

1인분(200g) 8000원.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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