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원의 펄프픽션]오컬트 호러 걸작 ‘로즈메리의 아기’

  • 입력 2007년 3월 24일 03시 01분


행복의 절정서 만난 공포 당신 이웃은 괜찮은가요

공포 영화사상 가장 소름끼치는 소년 소녀는 각각 ‘엑소시스트’(1973년)의 리건과 ‘오멘’(1976년)의 데미안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아는? 주저 없이 ‘로즈메리의 아기’(1967년)인 앤드루를 꼽겠다. 악의 실체가 천진무구한 ‘아이’로 밝혀질 경우 독자나 관객은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오컬트 호러의 걸작 ‘로즈메리의 아기’(황금가지)가 태어난 지 정확히 40년 만에 부활했다. 오컬트 호러란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실체 등을 소재로 삼는, 이른바 X파일류 호러물을 일컫는다. 아이라 레빈의 ‘로즈메리의 아기’는 당시 호러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전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이듬 해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의해 영화화(국내 개봉 제목 ‘악마의 씨앗’)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로즈메리의 아기’는 로즈메리와 가이라는 신혼부부가 이사하면서 시작된다. 대개 오래된 아파트에는 괴담이 있기 마련이지만 로즈메리와 가이는 어렵사리 손에 넣은 빅토리아풍 아파트를 포기하지 못한다. 대도시의 중산층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아파트, 든든한 직장, 단란한 가족을 꿈꾼다. 로즈메리와 가이도 마찬가지. 다만 이러한 소망을 하루빨리 이루길 원했던 것이 화근이다.

이사한 뒤부터 이 부부에게 행운이 이어진다. 가이는 연극에서 주역을 따내고 로즈메리는 아이를 가진다. 그러나 세상에 연이은 행운이란 없는 법이다. 갑자기 이웃집 여자가 자살을 하고, 가이의 경쟁자는 실명하고, 로즈메리의 아버지격인 허치가 돌연사하는 등 로즈메리의 주변에 타인의 불행이 이어진다. 행복의 절정에 이른 순간, 로즈메리는 주변의 죽음들이 퍼즐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린다. 웬만한 하드고어 장면에도 끄떡없는 21세기의 호러 팬들에게도 ‘로즈메리의 아기’의 반전과 결말은 여전히 공포스럽다. 특히 로즈메리가 아기를 내려다보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사라지지 않는 악’의 존재를 새삼 깨닫고,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서늘한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공포란 선혈이 낭자하고 무시무시한 외부 세계가 아닌, 인간 내면에 숨어 있던 양면성을 깨달을 때 야기되기 때문이다.

한혜원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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