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중2가 된 아들 순형에게
작년 이맘때쯤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네가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스스로 터득한 지혜’를 수업 시간에 발표하겠다고 자원한 일이 생각난다. 네가 발표에 도움 될 자료를 달라고 해서 강희맹의 ‘훈자오설(訓子五說)’ 다섯 편을 주고 작가와 작품을 설명해 줬지. 그때 네가 우화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서 다른 책도 읽어 보라고 권해 줬었다. 이솝우화는 이미 읽어서 라퐁텐 우화를 권했는데 예상과 달리 큰 흥미를 보이지 않더구나. 특유의 장식적인 문체가 어려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지금은 어떠니?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책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구나. 이제 이야기해 줄 테니 읽어 보아라. 내가 읽은 순서대로 소개하마.
맨 먼저 손에 잡은 것은 러시아 우화작가 이반 끄르일로프가 지은 ‘끄르일로프우화집’(문학과지성사)이란다. 날카로운 필치로 교활하고 음험한 인간들을 많이 풍자했는데 러시아 사람들이 풍기는 인상처럼 웅숭깊은 사람이 들려주는 인생의 진리를 듣는 듯하지. 거듭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단다.
그 다음에 손에 잡은 것은 인도의 ‘히또빠데샤’(통나무)란다. 인도 고전이라서 읽게 된 이 책은 알고 보니 우화였어. 우정의 획득, 우정의 파괴, 전쟁, 화해의 4장으로 구성된 책인데 처세하는 방법을 우화의 형식을 빌려서 말하려는 책이지. 이 책은 구성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이야기 전개방식이 아주 독특했어. 장마다 중심이 되는 주제를 담은 큰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계속 가지를 치면서 연결되어 전개되는 것이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거다. 이런 구조를 ‘틀 이야기 구조’라고 하는데,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 안에서 그 등장인물들이 각각 작은 이야기를 파생시키는 기법이야. 물론 작은 이야기를 독립시키면 그대로 작은 우화작품이 되는 거지.
마지막으로 한 달 전에 정말 재미있는 책을 읽었단다. ‘칼릴라와 딤나’(강)라는 책이야. 이 책 역시 아랍의 고전이라고 해서 사서 읽었는데 글쎄 공교롭게도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우화였어. 그런데 책을 보고 더 놀란 것은 이 책이 무려 1500년 전에 인도의 우화를 아랍어로 번역한 고전이란 건데 원본이 ‘히또빠데샤’가 근간으로 삼은 ‘판차탄트라’여서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는 거야.
물론 그냥 번역이 아니라 아랍의 색채로 완전히 탈바꿈시켜 명실상부한 아랍문학으로 재탄생했단다. 내가 읽어 봐도 전혀 다른 책이야. 느낌도 다르고.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아랍의 고전 작품이라고 해. 아랍문학은 뭔가 생소하게 느껴지기 쉬운데 난 그런 느낌을 거의 받을 수 없었어. 이 책은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게 읽었단다. 칼릴라와 딤나라는 두 마리 자칼이 주고받는 대화로 이루어진 이야기 하나하나가 정말 흥미로웠기 때문이지.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이 잘 꺼내고 유들유들하게 풀어 가는지, 어색하지 않게 처세 방법을 깨치는 것도 놀랍기만 했단다.
그동안 적지 않은 문학작품을 읽었지만 이처럼 참신하고 흥미도 있으면서 유익한 책은 많지 않았단다. 꼭꼭 숨어 있는 책을 발견하게 되어 몹시 기뻤어. 이제는 네게 권할 만한 책을 찾아낸 것 같아. 아마 너도 이 책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