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삶에서 이건 너무나 흔한 일입니다. 깊은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훌륭한 중학교에 들어간다고 상경했더니 그 명문 중학교는 서울 한복판의 어느 초등학교 옆구리에 붙여 지은 판잣집이었습니다. 이듬해 본교 건물로 돌아가 오랜 세월을 다녔던 정든 중고등학교는 ‘이 나라 최초의 공립 중등학교’라는 기념비도 무색하게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은 무슨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중등학교는 그래도 낫지요. 이 나라 최초의 국립대학이란 곳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외국 유학을 갔다 왔더니 대학은 자취도 없고 그 자리에 극장과 음식점, 술집들과 무슨 위원회가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그사이에 고향 초등학교도 폐교되었지요. 이게 다 정당을 만들어 수없이 신장개업하면서 새로운 ‘건국’을 하려 드는 주제넘은 사람들의 이상한 놀이입니다.
어디 초중등학교와 대학교뿐입니까? 이번에는 그 학교들이 자리 잡은 나라의 서울을 한구석으로 “균형 있게” 옮긴다고 법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십 년간 정붙이고 살아온 우리 아파트를 수억 원씩 들여 리모델링하자고 야단입니다. 그러면 아파트 값이 올라간다나요? 아파트 값이 올라가면 세금이 뛰고 그러면 지도자들께서는 “팔고 값이 싼 딴 동네로 가라”고 충고합니다. 한 인간의 정체성이란 ‘메모리즈’, 기억들의 축적, 정들고 길든 세월과의 친화력과 전통임을 그들은 모릅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내가 잠든 사이에 이 나라가 통째로 이사 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아무리 봐도 우리는 떠돌이 유목민의 후예인 것 같아요.
김화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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