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체제는 빈국의 희생을 볼모로 부국의 이익을 보호한다. 국제무역에서 보호주의를 걷어내고 자유무역으로 돌아가자는 지구 차원의 노력은 보호장벽을 겹겹이 쳐 버린 선진국들 탓에 수포로 돌아갔다. 미국에서 농민은 전체 인구의 1.7%에 불과하지만 미국 정부는 농민에게 엄청난 돈을 퍼붓는다. 결국 개발도상국 농민들의 생산품은 판로가 막혀 버렸다.”
얼핏 극렬한 세계화 반대주의자의 독설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독설의 주인공은 자신을 세계화의 열렬한 전도사라 부른다. 정보의 비대칭성에 관한 연구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다.
진정한 자유무역이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모든 나라에 공정한 무역이다. 모든 나라에 공정한 무역은 또 무엇일까.
자유무역은 상호주의로 이해돼 왔다. 잘살건 못살건 모든 무역장벽을 철폐하는 것이 최대의 목적. 이는 공정하지 않다. 저자의 연구 성과인 정보의 비대칭성(경제거래 당사자들이 똑같은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여기서 적용된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에 비해 협상력이 떨어지고 자유무역에 대한 정보도 불충분하다. 이를 무시하고 ‘우리도 열었으니 너희도 열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
저자는 묻는다. 개발도상국은 왜 자유무역을 주저할까.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에 비해 실업률이 높다. 사회적 보호망도 허약하다. 따라서 개발도상국이 시장 개방으로 치러야 할 비용은 무역 자유화로 얻는 ‘편익’보다 훨씬 크다.
그렇다고 보호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개발도상국이 자유무역에 참여하면서 최대의 이익을 얻게 하기 위해 선진국이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자유무역 진전을 위한 기반이 된다.
스티글리츠 교수가 해법으로 제안한 것은 개발라운드(개발도상국의 이익과 관심사를 반영해 그 나라의 개발을 촉진하는 협상)다. 자유무역으로 생기는 이득을 세계가 골고루 나눠 가져 인류 복지에 이바지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무역의 본래 취지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개발도상국의 생산품이 선진국의 시장에서 제한 없이 자유롭게 팔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는 개발도상국 간에도 적용된다. 못사는 후발도상국이 잘사는 개발도상국의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반대로 못사는 나라엔 핵심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한다. 이렇게 하면 개발도상국은 자유무역을 위한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가장 큰 이득이 가장 가난한 나라에 귀속되고 가장 잘사는 나라가 가장 광범위하게 자유화할 것”을 요구하는 저자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사회의 혜택을 가장 적게 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하자”는 존 롤스의 정의론이 떠오른다.
공허한 주장을 반복하기보다는 이전의 여러 무역협정을 돌아보며 개발도상국의 복지와 개발을 위해 제안된 협정 조항들의 긍정적 영향을 실증 분석했다.
다자주의를 지향하는 세계무역기구의 개혁을 주장한 책이지만 나라 간 무역장벽을 없애는 자유무역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해 협상 중인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아니, 미국의 협상자들에게 더 필요한 책이다. 원제 ‘Fair Trade for All’(2005년).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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