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상실은 가장 큰 인생수업이다…‘상실 수업’

  • 입력 2007년 3월 24일 03시 01분


◇상실 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지음·김소향 옮김/321쪽·9800원·이레

“하지만 이것만을 알라. 정작 피해야 하는 일은 쏟아내야 할 눈물이 충분히 빠져나오기 전에 울음을 억지로 멈춰 버리는 것이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멈추지 말라. 눈물이 전부 빠져나오게 두라. 그러면 스스로 멈출 것이다.”

책의 서평을 쓰기 위해 이 책의 전편에 해당하는 두 저자의 베스트셀러 ‘인생수업’ 서평을 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유작.’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인생수업을 쓴 뒤 진짜 유작인 이 책을 남겼다. 2004년 8월 24일 그녀가 죽고 몇 달 뒤 책이 출간됐다.

인생수업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려 했다면 이 책은 죽은 자를 떠나보내고 슬픔과 상실감 속에 살아야 하는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다. 죽음과 삶, 떠난 자와 남은 자라는 상반된 주제와 접근법을 사용했지만 두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같다. 인간이고 삶이다.

인간은 누구나 상실을 예감하고 산다. “밤비의 엄마가 총에 맞았어요.” “심바(라이언 킹)의 아버지가 결국 죽고 말았구나.” 책이나 영화를 통한 간접 경험뿐만이 아니다. 삶이 있어 죽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부모나 가족, 친구 등 결코 떠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한다. 저자는 그 상실감을 그대로 표출하라고 권고한다. 신을 향해 소리 내어 분노하고, 자신을 미워하며, 맘껏 슬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슬픔을 단축시키기 위한 무리한 위로를 삼가도록 권유한다. 그래야만 ‘부정-분노-타협-절망’의 단계를 거쳐 진정으로 상실을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용’은 ‘이상 없음’이나 ‘괜찮다고 느낌’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 새로운 현실이 영원한 현실임을 인정하게 되는 단계’다. 그리고 수용까지의 과정은 장기적이다. 사람에 따라 이 다섯 단계를 건너뛰기도 하고, 한 과정을 반복해서 경험하기도 한다. 상실은 종결이 아닌 ‘살아 있음의 증거’라는 것이 저자의 진정한 메시지다. 그리고 죽음과 상실을 넘어 영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임을 일깨운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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