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윌리엄 모리스, 장 누벨, 필립 스탁 등 손꼽히는 22인의 근현대 디자이너들의 삶과 예술에 대한 소개와 함께 신랄한 현실 비판 정신이 듬뿍 담겨 있다. 저자는 6년 반 동안 복직 투쟁과 소송을 거쳐 2005년 서울대 디자인학부로 복직한 김민수 교수.
맨 앞에 밀턴 글레이저를 소개한 것부터 심상치 않다. 글레이저는 ‘I♥NY’ 로고를 만든 유명한 미국의 디자이너. 9·11테러 후 로고에 ‘more than ever(그 어느 때보다도)’를 추가하며 뉴욕 시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졌던 그는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디자이너의 역할은 좋은 시민이 되는 것이고 좋은 시민은 민주주의에 참여하고 견해를 피력하고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시민 의식. 저자에 따르면 근현대 디자인의 초석을 다진 위대한 22인은 모두 시민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자들이었다.
예컨대 바우하우스의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는 데사우에 지은 바우하우스 건물에 정면과 후면의 지각적 차이를 없애는 시도를 통해 “모든 계급적 구분의 거만한 장벽을 걷어낸다”는 근대 시민 의식을 건축으로 구현하려 했다.
20세기 감각적인 산업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친 에토레 소트사스도 기능주의 디자인의 한계를 고민했던 인물로 소개됐다. 그는 기계적 삶을 강요하던 디자인에 대항해 인간 생활 환경의 진실을 폭로한 멤피스 그룹을 결성했다.
저자가 문인 루쉰과 이상을 22인에 포함시킨 것도 이러한 이유다. 루쉰의 경우 봉건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을 통해 중국 디자이너들에게 내면의 주관적 정서와 맞물린 근대적 시각언어를 자극했다는 것. 루쉰은 책을 만들 때 표지에 소설의 장면을 묘사하는 방식을 탈피해 주제에 맞는 시각 이미지를 요구함으로써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건축 그래픽 타이포그래피 디자인과 같은 시각적 텍스트를 활용한 이상의 실험시에는 근대기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적용하려 했던 작가의 치열한 고뇌가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디자인은 단순히 ‘황금의 비즈니스’가 아니라 ‘공공의 선’ 차원을 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디자인의 의미가 자본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고부가가치의 수단이 되었다는 저자의 통렬한 비판에 어떤 항변이 나올지 궁금하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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