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뭔가 달랐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다른 날보다 훨씬 늦게 일어났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탁 위에 밥상이 차려져 있는 걸 보고서야 엄마 아빠가 일찍 할아버지 집에 갔다는 게 생각났다. 어젯밤에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전화가 왔었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뭘 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어서다. 나는 언제나 엄마가 하라는 그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엄마가 없다. 마음이 불안해졌다. 엄마 대신 누군가 말을 해 줬으면 좋겠다. “지금 뭘 해야 해” 하고….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일어나라!”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그 말을 해 주지 않아서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다. 세수해라, 밥 먹어라, 청바지 위에는 파란 티셔츠를 입어라, 준비물을 잘 챙겨라, 다섯 시에 영어학원 차를 타라, 영어 끝나면 바로 수학학원으로 가라, 집에는 9시까지 와야 한다, 과외선생님이 오기 전에 숙제를 다 해 놓아야 한다, 자기 전에는 영어학습지 석 장을 풀고 검사를 맡아야 한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었다. 지금 나에게는 엄마의 그런 명령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지금 뭘 해야 할지 물어보기도 전에 엄마는 당장 나에게 뭘 하라고 명령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또 혼자 생각해 봤다. 지금 뭘 해야 하지?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수요일일까, 목요일일까? 수요일이 영어 원어민 선생님 수업인가? 문법인가? 과학나라는 무슨 요일이었지? 아참, 수영장도 가야 하나? 아! 누군가 내 귀에 들리게 명령을 내려 줬으면….
어쩔 수 없이 나 스스로 명령을 내렸다.
학원 차 올 시간이야. 가방에 워크북 집어넣어. 문제풀이집도 집어넣어. 숙제한 것도 잊으면 안 돼. 그런데 도대체 오늘은 무슨 학원에 가야 하는 거야. 정말 모르겠어.
나는 가방을 싸다 말고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몸이 점점 뻣뻣하게 굳어지는 느낌이다. 움직이기 싫다. 어떻게 하지? 나는 정말이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나?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이 바보야,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앉아 있어. 무슨 요일이냐고?”
엄마는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뭘 하고, 그 다음 몇 시에 뭘 하고, 그 다음에 또 뭘 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도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자, 빨리 움직여!”
“네, 알았어요.”
그제야 나는 벌떡 일어나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내 카드를 찾아 출석체크기에 댔다. 빨간 신호가 반짝 했다. 이 신호는 엄마가 가진 휴대전화에 내가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강의실 복도 끝에 커다란 거울이 보였다. 그 안에 가방을 메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로봇이 보였다. 그 로봇은 신기하게도 나를 똑 닮았다.
내 목에 걸린 휴대전화에 명령문이 들어왔다.
“영어수업 끝나고 곧바로 원어민 선생님 레벨 테스트한다. 5층에서 꼭 테스트 받고 올 것.”
“네, 알았습니다.”
그래, 좋았어. 나에겐 명령이 필요해. 나는 엄마를 위한 엄마에 의한 엄마의 로봇이니까.
공지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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