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공지희의 어린이 콩트<1>나는 로봇이다

  • 입력 2007년 3월 27일 02시 56분


공지희 책 ‘알로알로 내 짝꿍 민들레’ 중 김중석 그림. 사진 제공 비룡소
공지희 책 ‘알로알로 내 짝꿍 민들레’ 중 김중석 그림. 사진 제공 비룡소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큰일이라고 걱정을 많이 하지만, 정작 아이들 속내를 잘 알지 못한다. 아이에 대해 가장 모르는 사람이 아이의 부모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에 대한 욕심을 내세우고 관심과 보호라고 변명하며 아이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귀를 막고 있지는 않은가. 동화작가 공지희 씨는 “부모는 아이 생각을 찾아가는 수도자의 심정이 되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주부터 연재하는 공 씨의 어린이 콩트 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뭔가 달랐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다른 날보다 훨씬 늦게 일어났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탁 위에 밥상이 차려져 있는 걸 보고서야 엄마 아빠가 일찍 할아버지 집에 갔다는 게 생각났다. 어젯밤에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전화가 왔었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뭘 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어서다. 나는 언제나 엄마가 하라는 그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금 엄마가 없다. 마음이 불안해졌다. 엄마 대신 누군가 말을 해 줬으면 좋겠다. “지금 뭘 해야 해” 하고….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일어나라!”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그 말을 해 주지 않아서 제 시간에 일어나지 못했다. 세수해라, 밥 먹어라, 청바지 위에는 파란 티셔츠를 입어라, 준비물을 잘 챙겨라, 다섯 시에 영어학원 차를 타라, 영어 끝나면 바로 수학학원으로 가라, 집에는 9시까지 와야 한다, 과외선생님이 오기 전에 숙제를 다 해 놓아야 한다, 자기 전에는 영어학습지 석 장을 풀고 검사를 맡아야 한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었다. 지금 나에게는 엄마의 그런 명령이 필요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지금 뭘 해야 할지 물어보기도 전에 엄마는 당장 나에게 뭘 하라고 명령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또 혼자 생각해 봤다. 지금 뭘 해야 하지?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수요일일까, 목요일일까? 수요일이 영어 원어민 선생님 수업인가? 문법인가? 과학나라는 무슨 요일이었지? 아참, 수영장도 가야 하나? 아! 누군가 내 귀에 들리게 명령을 내려 줬으면….

어쩔 수 없이 나 스스로 명령을 내렸다.

학원 차 올 시간이야. 가방에 워크북 집어넣어. 문제풀이집도 집어넣어. 숙제한 것도 잊으면 안 돼. 그런데 도대체 오늘은 무슨 학원에 가야 하는 거야. 정말 모르겠어.

나는 가방을 싸다 말고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몸이 점점 뻣뻣하게 굳어지는 느낌이다. 움직이기 싫다. 어떻게 하지? 나는 정말이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나?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이 바보야,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앉아 있어. 무슨 요일이냐고?”

엄마는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뭘 하고, 그 다음 몇 시에 뭘 하고, 그 다음에 또 뭘 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도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자, 빨리 움직여!”

“네, 알았어요.”

그제야 나는 벌떡 일어나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내 카드를 찾아 출석체크기에 댔다. 빨간 신호가 반짝 했다. 이 신호는 엄마가 가진 휴대전화에 내가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강의실 복도 끝에 커다란 거울이 보였다. 그 안에 가방을 메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로봇이 보였다. 그 로봇은 신기하게도 나를 똑 닮았다.

내 목에 걸린 휴대전화에 명령문이 들어왔다.

“영어수업 끝나고 곧바로 원어민 선생님 레벨 테스트한다. 5층에서 꼭 테스트 받고 올 것.”

“네, 알았습니다.”

그래, 좋았어. 나에겐 명령이 필요해. 나는 엄마를 위한 엄마에 의한 엄마의 로봇이니까.

공지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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