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김혜련/‘밤손님’의 아내가 쓴 편지

  • 입력 2007년 3월 29일 03시 00분


어느 신부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다. 2월 어느 날 새벽, 야밤에 ‘딱! 딱!’ 하는 소리가 들리더란다. 까치발을 하고 조심스레 창 너머를 살펴보니 사제관 아래층에서 검은 물체가 철창을 자르고 있었다. 신부님은 아래로 내려가야 할지, 경찰을 불러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후자로 선택한 뒤 다이얼을 꾹꾹 눌러 이른바 신고라는 것을 하셨다.

문제는 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경찰서에서 새벽까지 조서를 만드는 일에 협조하고 돌아오니 성당 사무실에 간밤에 다녀간 ‘밤손님’의 아내가 쓴 편지가 한 통 와 있더란다.

신부님은 그 편지를 수녀들에게 읽어 주시며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물으셨다. 편지에는 자신들은 그날그날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 있으며 그날도 남편이 일을 나가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어서 바가지를 긁었는데 자기 때문에 남편이 그런 짓을 했을 거라며 용서와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나이 어린 이 아낙은 임신 중이며 그 남자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절규에 가득 찬 내용이었다. 편지의 대부분이 용서해 달라는 내용, 듣는 우리가 민망하고 송구스러울 정도의 ‘용서’와 ‘선처’로 범벅이 된 편지였다.

경찰은 범인이 현장에서 체포됐기 때문에 정상 참작이 어렵고 더욱이 이전에도 전과가 네 번이나 있어서 쉽게 풀려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침묵으로 귀 기울여 듣던 수녀들은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잠시 후 그 남자는 법대로 처리될 것이니 어린 아낙을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로 결론을 모았다.

이 사건은 한동안 내게 긴 여운으로 남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삶의 악순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가난은 결코 죄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우리 모두 좀 더 바르게 살도록 노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아무리 가난해도 누군가에게 줄 수 있고 아무리 부자라 해도 누군가에게서 받아야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물질뿐만 아니라 사랑과 배려, 작은 관심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가치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 신부님의 고민은 그분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임을 통감하면서 모든 일이 서로에게 좋게 이루어지기를 비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아 본다.

김혜련 수녀·노틀담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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