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작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에서 회화적인 구성과 경쾌한 문체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김 씨. 그는 소설집에서도 낯선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본다. 구차스러운 생활에, 의존적인 여성이 변화하는 모습을 묘사한 표제작 ‘그녀는 안개와 함께 왔다’, 유학하고 돌아와 이력서를 뿌렸지만 면접조차 보지 못한 30대 여성의 이야기 ‘새우깡 공주’ 등에서 작가는 사회의 그늘진 이면을 주저 없이 짚는다.
단편 ‘7시 오후의 불가사의한 미로’는 시인 남자친구를 둔 노처녀 은영의 사연이다. 보편적인 가치에만 길들여졌지만 시인이라는 존재가 해맑으면서도 낯설어 끌렸다는 은영은 그러나, 남자친구를 보고 싶다는 가족들에겐 그 해맑음이 먹히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설상가상으로 자신 없어서 가족들과 만나기 싫다는 남자친구 때문에 은영은 급기야 대행업체에 전화를 걸어 ‘대리 애인’을 구하기에 이른다.
그의 작품은 한국 단편의 문체 미학을 거스르는 쪽이다. 문장은 성글고 직설적이다. 그렇지만 김 씨의 소설에는 현실을 민망스럽도록 까발려서 그 현실에 속한 독자를 부끄럽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은영이가 시인 애인의 볼품없는 모습에 새삼 실망하는 장면, 대리 애인을 구하려다 황당하게 사기를 당하는 장면은 안쓰러운 게 아니라 쓰디쓰다. 주인공에게 공감하거나 연민을 보내는 게 아니라 고개를 돌리고 싶은 심정이 이는 것은 만연한 속물근성을, 기교를 덧입히지 않고 가차 없이 내보이기 때문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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