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대군,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탄생시키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컬렉터는 조선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1418∼1453)이라고 할 수 있다. 시서화(詩書畵)에 능했던 안평대군은 자신이 꿈에서 본 도원(桃源)을 안견에게 얘기해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리게 한 주인공이다.
안휘준(한국회화사) 명지대 석좌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안평대군의 컬렉션은 조선과 중국의 명화를 망라해 모두 222점에 이른다. 이원복(한국회화사) 국립전주박물관장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려 말 중국을 드나든 사람들이 가져온 명화와 노국공주가 공민왕에게 시집올 때 가져온 작품 등이 조선 왕실로 넘어오면서 이를 소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추정했다.
巨富김광국의 수집 열정, 위대한 화가를 낳다
간송,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수호 운동에 앞장서다
그러자 문화재의 일본 유출을 막기 위해 수집에 나선 사람들이 등장했다. 기미독립운동 33인의 한 사람이자 서화비평가였던 위창 오세창(1864∼1953)과 당시 최고의 부호 출신인 간송 전형필(1906∼1962)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전형필은 오세창에게서 문화재의 가치와 감식안을 배워 그의 나이 20대 말인 1930년대부터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의 컬렉션은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비롯해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 청자, 조선 백자 등 한국 최고 명품을 총망라한다.
고려 청자 가운데 최고 명품으로 꼽히는 국보 68호 청자상감구름학무늬매병은 그가 1935년 2만 원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 당시 좋은 기와집 한 채가 1000원 정도였다. 만일 이 청자가 지금 거래된다면 수백억 원을 능가할 것이다.
이병철… 한광호… 대형 컬렉터들, 전문화시대 열다
한편 현대미술 컬렉터로는 충남 천안시 아라리오 갤러리의 김창일 대표를 꼽을 수 있다. 2006년 미국 미술월간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세계의 톱 컬렉터 200인’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현대미술 분야의 대표 컬렉터로 꼽힌다. 그는 20여 년 동안 외국 거장들의 작품 2000여 점을 수집했다.
▼아낌없이 기증한 사람들▼
《거액을 투자해 평생 모은 미술품은 컬렉터의 분신과도 같다. 이런 컬렉션을 공공 박물관에 선뜻 기증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컬렉션 기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관건은 자녀들의 동의를 받는 일이다. 유산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는 자녀들이 동의해 주지 않으면 아무리 부모라 해도 자신의 컬렉션 기증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기증 문화 분위기에 힘입어 컬렉션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홍근 - 1000억 원대 선뜻 내놔
김용두 - 100억 원대 명화 포함 세 차례
어린 시절 일본에 건너가 기업을 이뤘던 재일교포 사업가 김용두(1922∼2003·사진)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수백억 원대의 문화재 180여 점을 자신의 고향인 경남 진주의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했다. 그의 기증품 가운데 하나인 16세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현재 시가 100억 원으로, 단일 기증품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창종 - 韓中日기와 1800점 박물관에
송성문 - 성문종합영어 이익금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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